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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407
한자 李懷林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산83-18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은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451년 - 이회림 사망
개축 시기/일시 1636년경 - 이회림 묘 소실 후 복원
현 소재지 이회림 묘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산83-18(N37° 39′ 15.7682″, E127° 01′ 55.8937″)지도보기
성격 능묘
관련 인물 이석형
소유자 연안 이씨 종중
관리자 연안 이씨 종중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회림의 묘.

[개설]

이회림(李懷林)[?~1451]의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할아버지는 이광(李匡), 아버지는 이종무(李宗茂)이다. 이회림태종 대에 개국 원종 일등 공신(開國原從一等功臣)에 책록되고 보의장군 충좌시위사 대호군(保義將軍忠佐侍衛司大護軍)에 봉해졌다. 사후 좌의정으로 추증되었다. 병자호란 이후 묘가 소실되었는데, 1636년(인조 14) 후손들에 의해 지금의 묘비가 세워지게 되었다. 이회림의 아들인 개국 원종 이등 공신이자 연성 부원군(延城府院君) 이석형(李石亨)[1415~1477]은 정몽주(鄭夢周)의 손녀사위이다. 훗날 정몽주의 묘를 고향 경상북도 영천으로 이장하던 중 용인시 수지 근처에서 명정(銘旌)이 날아가 이석형의 묫자리에 떨어져 결국 정몽주의 묘를 현재 그 옆인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에 만들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위치]

이회림의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산83-18번지에 있으며, 정의 여자 중·고등학교에서 북쪽에 자리한 구릉 약 50m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병자호란 이후 묘가 소실되어 현재의 묘는 17세기 이후의 모습이다. 아울러 현대에 각종 석물을 추가로 보완하였다.

[형태]

묘는 단분 합장으로 정경부인 박씨와 합장하였다. 좌향은 동향이며, 근래에 새로 호석(護石)을 둘렀다. 묘표·문인석 등 17세기에 추가로 보완한 석물과 근래 건립한 신비석·혼유석·석상·향로석·석망주 등을 갖추었다. 묘표는 팔작지붕 개석에 방형의 대석으로 제작한 옥개 방부형(屋蓋方趺形)이다. 1636년에 세웠으며, 규모는 비신의 크기가 62×23×123㎝이다.

[금석문]

17세기에 제작한 이회림의 묘표가 있다. 비신 앞면에 ‘증좌의정 이회림 묘 증정경부인 박씨 묘 재위(贈左議政李懷林墓 贈貞敬夫人朴氏墓在位)’라고 새겼다. 뒷면에는 ‘숭정 구년 병자 사월 일립(崇禎九年丙子四月日立)’이라고 새겼다.

[현황]

15세기 중반에 조성하였으나 병자호란으로 소실되었다가 후대에 다시 조성한 것이다. 묘표 등의 석물은 마모와 변색이 많이 진행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의 3대 명문가 중 하나인 연안 이씨의 초기 묘역의 형태를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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