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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서원 강당중건상량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707
한자 道峯書院講堂重建上樑文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구본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95년 - 「도봉서원 강당중건상량문」 저자 이경석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71년 - 「도봉서원 강당중건상량문」 저자 이경석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700년 - 「도봉서원 강당중건상량문」잉 수록된 『백헌집』 간행
배경 지역 도봉서원 - 서울특별 도봉구 도봉동지도보기
성격 상량문
작가 이경석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이경석도봉서원의 강당 중건을 기념하여 지은 상량문.

[개설]

「도봉서원 강당중건상량문(道峯書院講堂重建上樑文)」은 조선 후기의 문신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1595~1671]이 상량식 할 때에 강당의 성대함과 유도(儒道)의 엄중함을 내용으로 지은 사륙변려문(四六騈麗文)으로 된 상량을 축복하는 글이다. 정확한 창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본문에 병자호란에 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1636년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도봉서원 강당중건상량문」이경석의 시문집 『백헌집(白軒集)』 권15에 수록되어 있다.

이경석은 이 글뿐만 아니라 여러 편의 서원(書院) 상량문(上樑文)을 남기고 있는데 정몽주(鄭夢週)[1337~1392]와 서경덕(徐敬德)[1489~1546]을 배향한 개성(開城)의 숭양 서원(崇陽書院), 이이(李珥)[1536~1584]의 위패를 모신 파주의 자운 서원(紫雲書院),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위패를 모셨던 함양의 용문 서원(龍門書院), 김상용(金尙容)[1561~1637]과 김상헌(金尙憲)[1570~1652] 등의 위패를 모신 남양주의 석실 서원(石室書院) 등에 부친 상량문이 그것이다. 한편 이경석은 이 글 외에도 도봉 서원존경각(尊經閣)에 대한 상량문도 지어 전하고 있다.

이경석의 자는 상보(尙輔), 호는 백헌,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김장생(金長生)[1548~1631]의 문인으로, 1623년 인조반정이 있은 후 알성 문과(謁聖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체찰사 장만(張晩)[1566~1629]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강원도 군사 모집과 군량미 조달에 힘썼는데, 이때 쓴 「격강원도사부부로서(檄江原道士夫父老書)」는 특히 명문으로 칭송되었다. 양관[홍문관과 예문관] 대제학 등을 지냈으며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렀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백헌집』이 전한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구성]

「도봉서원 강당중건상량문」은 먼저 도(道)의 엄중함을 강조하고 나서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학덕을 칭송하였다. 그러고는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피폐해진 도봉서원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단순히 몇몇 유자들의 소망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큰 사업임을 강조한 후 도봉서원 중에서도 특히 강당의 성대함을 상찬(賞讚)[기리어 칭찬함]하고 있다.

[내용]

「도봉서원 강당중건상량문」은 사람들이 도가 있는 곳을 떠받들며 배우면서 미치지 못하는 듯이 하는데, 바로 조광조가 그러한 인물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이어서 조광조의 학덕을 기리고 있는데, 주요한 내용은 조광조가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의 학문으로 높은 경지에 이르러 사우(師友)들이 모범으로 삼았다든지, 삼대(三代)의 다스림을 회복하기를 기약하여 공자와 맹자를 법으로 삼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존숭하였다는 등의 내용이다.

도봉서원이 도성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벼슬아치들이나 현자들이 많이 찾아옴을 언급하고, 공자가 말한 바 “유교무류(有敎無類)”, 즉 가르침은 있으나 차별이 없음을 강조하여 강당(講堂)의 존재 의의를 드높이고 있다. 강당에서의 차별 없는 가르침과 유자들의 잠심(潛心)을 통해 주자가 강의한 바 있는 백록 서원(白鹿書院)을 본받고자 하는 뜻을 드러내고 있다. 글의 후반부에는 양동(梁東)→ 양서(梁西)→ 양남(梁南)→ 양북(梁北)→ 양상(梁上)→ 양하(梁下) 등의 순으로 술을 뿌리며 축원하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특징]

「도봉서원 강당중건상량문」은 사륙변려문으로 되어 있다. 저자인 이경석이 남긴 대부분의 상량문이 사륙변려문이며, 이는 이경석이 변려문에 뛰어났던 것과도 관련된다. 이경석은 변려문을 잘 지었던 조찬한(趙纘韓)[1572~1631]으로부터 수학한 바 있어 그 역시 변려문에 능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에 사륙변려문으로 상량문을 지은 예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도봉서원 강당중건상량문」은 전형적인 상량문의 형식을 잘 따르고 있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이경석은 이 글 외에도 「영릉 정자각 상량문(英陵丁字閣上梁文)」, 「숭양 서원 상량문(崇陽書院上梁文)」, 「자운 서원 상량문(紫雲書院上梁文)」, 「자운 서원 강당 상량문(紫雲書院講堂上梁文)」, 「자운 서원 중건 상량문(紫雲書院重建上梁文)」, 「용문 서원 강당 상량문(龍門書院講堂上梁文)」, 「석실 서원 상량문(石室書院上梁文)」, 「삼현 사우 상량문(三賢祠宇上梁文)」, 「태평루 중수 상량문(太平樓重修上梁文)」 등 여러 편의 상량문에서 변려문을 시범하고 있다. 「도봉서원 강당중건상량문」은 특히 유려한 변려문으로 작성된 상량문의 모범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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