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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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峯書院尊經閣上樑文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본현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595년 - 「도봉서원 존경각상량문」 저자 이경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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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671년 - 「도봉서원 존경각상량문」 저자 이경석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700년 - 「도봉서원 존경각상량문」이 수록된 『백헌집』 간행 |
배경 지역 | 도봉서원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
성격 | 상량문 |
작가 | 이경석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이경석이 도봉서원의 존경각에 부친 상량문.
[개설]
「도봉서원 존경각상량문(道峯書院尊經閣上樑文)」은 조선 후기의 문신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1595~1671]이 성현의 경전을 보관하는 존경각(尊經閣)의 상량을 축복하는 글이다. 「도봉서원 존경각상량문」은 이경석의 시문집 『백헌집(白軒集)』 권15에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창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경석이 병자호란 이후에 쓴 「도봉서원 강당 중건 상량문」이 『백헌집』에서 이 글 앞에 놓인 것으로 보아 「도봉서원 존경각상량문」 역시 병자호란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경석의 자는 상보(尙輔), 호는 백헌,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김장생(金長生)[1548~1631]의 문인으로, 1623년 인조반정이 있은 후 알성 문과(謁聖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체찰사 장만(張晩)[1566~1629]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강원도 군사 모집과 군량미 조달에 힘썼는데, 이때 쓴 「격강원도사부부로서(檄江原道士夫父老書)」는 특히 명문으로 칭송되었다. 양관[홍문관과 예문관] 대제학 등을 지냈으며,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렀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백헌집』이 전한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구성]
「도봉서원 존경각상량문」은 성현의 경전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도봉서원이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고는 당시 도봉서원의 성대함, 존경각의 구체적인 위치, 존경각에 보존되어 있는 서적의 종류 등에 대해 언급한 뒤 축원의 말을 덧붙이고 있다.
[내용]
「도봉서원 존경각상량문」은 서원에서 마땅히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 성현의 경전을 보관하는 ‘존경각’이어야 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러고는 도봉서원이 조광조의 유적(遺蹟)임을 언급하고, 젊은이나 연장자 가릴 것 없이 모여드는 서원의 성대함을 말하고 있다. 또 존경각이 서원 담장의 동쪽, 흐르는 시냇물의 북쪽에 위치하여 도봉산의 기이한 산세가 감싸고 있다고 하여 주변 경관의 형세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어서 존경각에 보관되어 있는 책의 종류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으로부터 금문(今文)과 고문(古文), 사학(史學) 그리고 자집(子集)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양의 도서가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그 많은 도서를 열심히 열람하고 신명(神明)처럼 공경한다면 벼슬길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그러고는 상량문의 격식에 따라 양동(梁東)→ 양서(梁西)→ 양남(梁南)→ 양북(梁北)→ 양상(梁上)→ 양하(梁下) 등의 순으로 술을 뿌리며 축원하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특징]
「도봉서원 존경각상량문」은 변려문으로 되어 있으나 엄격한 사륙변려문(四六騈麗文)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일반적인 상량문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의의와 평가]
「도봉서원 존경각상량문」은 현재 남아 있지 않은 도봉서원 존경각의 위치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자료이다. 또 존경각에 보존되어 있는 서적이, 비록 구체적으로 책명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고금의 여러 분야에 걸쳐 있는 다양한 서적들을 망라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