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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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司藝趙汝吉-道峯書院-消息-途中-留宿-詩-次韻- |
이칭/별칭 | 「노문조사예여길재도봉서원 왕심유숙 잉차기운(路聞趙司藝汝吉在道峯書院 往尋留宿 仍次其韻」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인규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29년 - 「사예 조여길이 도봉서원에 있다는 소식을 도중에 듣고서 가서 유숙하고, 이어 그 시에 차운하다」 저자 박세당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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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668년 - 「사예 조여길이 도봉서원에 있다는 소식을 도중에 듣고서 가서 유숙하고, 이어 그 시에 차운하다」 창작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03년 - 「사예 조여길이 도봉서원에 있다는 소식을 도중에 듣고서 가서 유숙하고, 이어 그 시에 차운하다」 저자 박세당 사망 |
배경 지역 | 도봉서원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
성격 | 한시 |
작가 | 박세당(朴世堂)[1629~1703] |
[정의]
1668년 박세당이 도봉서원을 찾아가 조여길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개설]
「사예 조여길이 도봉서원에 있다는 소식을 도중에 듣고서 가서 유숙하고, 이어 그 시에 차운하다」는 박세당(朴世堂)[1629~1703]이 사예(司藝) 조여길(趙汝吉)이 도봉서원(道峯書院)에 있다는 소식을 도중에 듣고 가서 유숙하고, 이어 조여길의 시에 차운한 시이다. 도봉서원은 왜란으로 소실된 도봉산 영국사(寧國寺) 절터에 1573년(선조 6) 양명학자인 남언경이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창건 때 ‘도봉(道峯)’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았고, 1696년(숙종 22)에는 송시열(宋時烈)을 배향하였다. 이 작품에서 언급된 ‘여길(汝吉)’은 조가석(趙嘉錫)[1634~1681]의 아들로, 본관은 양주(楊州), 호(號)는 태촌(苔村)이다.
[구성]
첫 번째 시는 조여길을 만나러 가면서의 일과 만나서 담론을 나누었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수련(首聯)은 조여길의 행방을 알게 된 사정, 함련(頷聯)은 도봉서원으로 가는 여정, 경련(頸聯)은 주변 자연 경물과 자신의 모습, 미련(尾聯)은 조여길과의 담론과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였다. 사건의 진행에 따른 순차적인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두 번째 시는 조여길에게 도봉에 계속 머물기를 권하는 내용이다. 첫 번째 시가 각 연별로 개별 사건을 순차적으로 기록한 것에 비해 두 번째 시는 시 전체가 저자가 조여길에게 권하는 대화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세 번째 시는 저자 자신의 심경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앞의 두 시와는 또 다르게 시 전체를 하나의 독백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렇듯 세 수의 구성이 모두 각각 차이를 보이면서도 서로 하나의 사건을 유기적으로 이어 주고 있는 독특한 형식을 띤다.
[내용]
1.
지군작출성(知君昨出城)[말을 멈춘 채 사람 만나 얘기 나누고서]
지군작출성(知君昨出城)[그대가 어제 도성을 나간 줄 알았어라]
방장과계거(方將過溪去)[바야흐로 시내를 지나가려다가]
각복입림행(却復入林行)[도리어 숲 속 길로 접어들었네]
안저청산재(眼底靑山在)[눈 아래엔 푸른 산이 펼쳐지는데]
두변백발생(頭邊白髮生)[머리 가엔 흰 머리털이 생겼구려]
계창십년사(鷄窓十年事)[계창에서 지난 10년 얘기하다가]
수성문잔경(睡醒問殘更)[졸다 깨어 새벽 시간을 묻노라]
2.
권군무사차지류(勸君無事且遲留)[권하노니 그대 일이 없거든 우선 머물러]
심처응수경일수(深處應須更一搜)[모쪼록 다시 한 번 깊은 골 찾아보게나]
종차편리입성거(從此鞭羸入城去)[야윈 말 채찍질하여 도성으로 들어간 뒤에는]
운산수호만회두(雲山雖好謾回頭)[이 운산이 좋다지만 속절없이 그리워하리니]
3.
형창석일소년생(螢窓昔日少年生)[형창에서 옛적 독서하던 소년이]
백수환종차지행(白首還從此地行)[백발에 다시 이곳에 찾아왔네]
산조계어개구식(山鳥溪魚皆舊識)[산새와 물고기 모두 낯이 익건만]
유유세월독무정(悠悠歲月獨無情)[하염없는 세월만 홀로 무정하여라]
첫 수의 ‘계창(鷄窓)’은 곧 서재를 뜻하는데, 이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진(晉)나라 때 연주자사(兗州刺史) 송처종(宋處宗)이 잘 우는 닭 한 마리를 사서 항상 서재 창 사이의 조롱에 두고 매우 사랑하며 길렀다. 닭이 마침내 말을 하게 되어 송처종과 담론하였는데 매우 말재주가 있어 종일토록 그치지 않았다. 송처종이 이로 인해 언변이 크게 진전하였다 한다.
세 번째 수 기구(起句)의 ‘형창(螢窓)’은 진(晉)나라의 차윤(車胤)이 등불을 켜 책을 읽을 기름을 살 돈이 없어 반딧불을 수십 마리 모아서 책을 비추어 읽었다는 고사와, 같은 시대에 손강(孫康)이라는 소년이 기름 살 돈이 없어 추운 날씨에 창으로 몸을 내밀어 눈에 비친 달빛으로 책을 읽었다는 고사를 압축하여 ‘고생 속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서 파생되어 여기에서도 ‘반딧불이 비치는 창가’라는 뜻으로, ‘공부방의 창’을 가리키는 말이다.
[특징]
첫째 수는 ‘경(庚)’ 운으로 운자는 ‘성(城)’, ‘행(行)’, ‘생(生)’, ‘갱(更)’이다. 둘째 수는 ‘우(尤)’ 운으로 ‘류(留)’, ‘수(搜)’, ‘두(頭)’가 운자이다. 마지막 세 번째 수도 ‘경(庚)’ 운으로 운자는 ‘생(生)’, ‘행(行)’, ‘정(情)’이다. 세 수의 구성이 모두 각각 차이를 보이면서도 서로 하나의 사건을 유기적으로 이어 주고 있는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의의와 평가]
「사예 조여길이 도봉서원에 있다는 소식을 도중에 듣고서 가서 유숙하고, 이어 그 시에 차운하다」는 구성 부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세 수의 시가 서로 다른 구성을 취하여 각각의 사건과 내용을 두드러지게 하면서도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첫 번째 시에서는 여정과 담론의 내용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과 같이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고, 청산과 백발을 대비한 장면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두 번째 시는 비록 조여길에게 하는 말이지만 이 말 안에 자연을 사랑하고 번다한 시정을 싫어하는 저자의 감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시에서는 저자의 독백을 통해 어느새 세월의 흐름 속에 늙어 버린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며 늙음에 대한 탄식이라는 인간 보편의 감정을 읊고 있다. 하나의 주제 아래 각각의 구성과 각각의 내용을 드러낸 독특한 방식, 바꾸어 말하면 각각의 구성과 각각의 내용을 하나의 주제로 묶고 있는 특징적인 방식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