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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원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313
한자 樓院店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현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할 지역 누원점 위치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340지도보기
성격 장시

[정의]

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있던 장시.

[개설]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 위치하고 있던 누원(樓院)의 인근에 생겨난 장시(場市)를 말한다. 조선 후기 이 지역에 교통의 요지라는 장점을 살려 서울 인근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장시가 생겨났고 상업이 번창하였다. 누원점은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340번지에 있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누원점(樓院店)이 있었던 지역 인근에 누원이 있었다. 누원은 서울과 함경도 및 경기도 북부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의 분기점에 위치한 숙박 시설로 이 지역이 교통상의 요지에 해당함을 말해 준다. 이 같은 장점을 바탕으로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이 지역의 상업이 발달하게 되었고 장시가 형성되었는데 누원점이라 불렀다.

[관련 기록]

『국역 일성록(國譯日省錄)』 정조 6년 임인[1782, 건륭 47] 8월 7일[신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누원점의 건방(乾房) 명색을 혁파하고 공시당상(貢市堂上)이 획일적으로 제도를 정하라고 명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새로 들어온 어물전(魚物廛)의 백성들을 불러 원하는 바를 물어보니 이르기를, ‘누원점은 바로 어상(魚商)들이 왕래하는 요지에 있는데 본전(本廛)에 들어오는 어물을 누원점 놈들이 한꺼번에 독점해 버립니다. 이를 건방이라고 하는데 중도아(中都兒)들과 결탁하여 본전의 백성들로 하여금 국역(國役)에 응하여 생업을 유지하는 것을 할 수 없게 하니, 경기 감영에 분부하여 엄히 금하게 하소서’ 하였습니다.

누원점의 백성들이 어물전의 이익을 모두 빼앗아서 전민들이 생업을 잃게 되었으니 놀랍기가 막심합니다. 누원점 건방의 명색을 우선 혁파하고, 이 뒤로 만약 범하는 자가 있으면 엄히 형추(刑推)하여 정배하라고 기영(畿營)에 관문(關文)을 보내어 분부하고 엄히 과조(科條)를 세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중도아에 대한 금령이 본래 지극히 엄한데 간사한 백성들이 몰래 강압적으로 차지하니 또한 지극히 교활하고 가증스럽습니다. 일체 금령에 따라 조율하여 엄히 다스리라는 뜻으로 통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여, 윤허하였다.”

[내용]

조선 후기에 들어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장점을 살려 누원점은 상당한 규모의 장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누원점이 속한 양주목은 금난전권(禁難廛權)[난전(亂廛)을 규제할 수 있도록 나라로부터 부여받은 시전(市廛)의 특권]의 적용이 배제된 지역이었으므로 도성의 시전 상인의 제재(制裁)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러한 조건을 배경으로 누원점은 특히 함경도 지역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어물 등을 독점할 수 있었다. 누원점의 상업이 번창하면서 송파의 장시와 함께 도성 인근에서 손꼽히는 큰 장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의의와 평가]

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이 조선 후기에 들어 교통의 장점을 이용하여 상업이 크게 발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는 당시의 지역 사회를 연구하는 데 기본적인 배경으로 고려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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