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세거 성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436
한자 世居姓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집필자 홍승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종친회 사무소 함열 남궁씨 중앙 종친회 사무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 1동 589-3지도보기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대를 이어 집단으로 거주해 오고 있는 성씨.

[개설]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는 대체로 양주(楊州) 해등촌면(海等村面)에 해당한다. 따라서 도봉구의 세거 성씨는 해등촌면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과거에는 해등촌면에 거주하는 성씨들을 따로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봉구만의 세거 성씨를 파악하기는 힘들며, 양주(楊洲) 지역의 성씨 정도를 참고할 수 있다. 그 외에 도봉구 지역에 집안의 묘역이 있는 경우 도봉구와 관련한 성씨라 할 수 있다. 한편 서울로 편입된 이후에는 개발과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전통적 집성촌 개념의 세거 성씨는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양주의 세거 성씨]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11 경기 양주목의 성씨조를 보면 견주(見州)에 이(李)·김(金)·송(宋)·신(申)·백(白)·윤(尹)·피(皮)가 있고, 한양에 한(韓)·조(趙)·민(閔)·신(申)·함(咸)·박(朴)·홍(洪)·부(夫)·최(崔)·정(鄭), 풍양(豊壤)에 조(趙)·이(李)·강(姜)·윤(尹)·유(劉), 그리고 사천(沙川)에 이(李)·경(耿)·임(任)·송(宋)·허(許)가 있다고 했다.

[풍양 조씨]

도봉구와 관련이 있는 유명 성씨로는 우선 풍양 조씨(豊壤趙氏)를 들 수 있다. 현재 도봉구 도봉 1동 401번지에 있는 광륜사(光輪寺)는 원래 이름이 만장사(萬丈寺)였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신정 왕후(神貞王后)[1808~1890]가 부친인 풍은 부원군 조만영(趙萬永) 사후에 새로 짓고 별장처럼 사용하면서 만년을 보냈던 곳이다. 이곳에 절을 고쳐 지은 것은 풍양 조씨의 선산과 인접한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서울 북부에 해당하는 동소문 밖에서부터 의정부 지역에 해당하는 지역의 땅은 거의 신정 왕후의 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지역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었고, 이 지역의 주민들은 그 땅에서 소작민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지냈다. 신정 왕후는 말년에 이곳에서 나라를 위해 기도하거나 자손들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다가 1890년에 사망하여 수릉(綏陵)에 안장되었다. 이렇듯 풍양 조씨가 도봉구 지역과 깊은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이곳에 세거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함열 남궁씨]

도봉구 지역에서 집성촌을 형성했다고 할 만한 성씨로는 함열 남궁씨(咸悅南宮氏)를 들 수 있다. 함열 남궁씨의 시조는 남궁원청(南宮元淸)으로 고려 성종조에 문하시중 평장사를 지냈고, 감물아현백(甘勿阿縣伯)에 봉해졌는데, 감물아[현 익산시 함라면]가 함열의 옛 이름이어서 후손들이 함열을 관향으로 삼은 것이다.

함열 남궁씨는 주로 익산군과 충암군, 부여군 및 경기도 양주군 등지에서 세거하였는데, 고려 시대부터 양주 지역[지금의 서울 포함]에서 거주하였고, 도봉산, 해등촌 일대는 함열 남궁씨의 사패지(賜牌地) 지역이었다. 또 조선 초 남궁계(南宮啓)가 왕자의 난 당시 원종공신이 되는 등 여러 공을 세우면서 조정으로부터 도봉구 일대를 식읍으로 하사받은 바 있다.

이후 대체로 11세 남궁회(南宮恢)의 후손들인 승지공파가 도봉구 지역에 정착하였는데, 가선대부 이조 참판을 지낸 남궁회의 3남 남궁급(南宮芨)이 도봉 문중의 개조이다. 그 후손들이 도봉동무수골, 방학동성고개, 쌍문동의 이패, 창동유만리에 거주하였다. 현재도 중앙 종친회가 도봉구 도봉 1동 589-3번지에 있을 정도로 함열 남궁씨는 도봉구와 깊은 관련이 있다. 다만 도시화 이후 집성촌 개념의 세거지로 볼 수는 없는 형편이다.

2000년에 있었던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현재 도봉구 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 일대에 남궁씨는 117세대 385명이가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도봉동과 무수동의 도봉산 선영에는 남궁씨의 묘소[도봉동 산86번지, 도봉동 산69-7번지]가 있다.

[기타 성씨]

함열 남궁씨 이외에도 안동 권씨, 순흥 안씨, 파평 윤씨 등이 소규모로 모여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동 권씨의 경우 쌍문 2동 근방과 방학동 등에서 집성촌을 형성하여 약 20~30가구 등이 모여 살았다고 하나, 이 지역이 1985년경부터 개발되어 흩어졌고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서울이라는 최대의 도시의 일부가 되면서, 소규모 집성촌의 개념은 유지될 수 없었던 것이다. 즉 현재로서는 집성촌이나 세거 성씨의 면모는 남아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도봉구에 묘역이 있는 성씨]

한편 도봉구는 도봉산이라는 큰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세거지보다는 묘역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었다. 따라서 도봉구와 관련된 성씨들은 많은 경우 집성촌을 형성한 것보다는 선산 묘역이 조성되면서 관련되는 경우가 많다. 묘역이 도봉구 영역 내에 조성된 성씨로 대표적인 것은 풍양 조씨[방학동 산36-1, 산53-1번지], 덕수 이씨[방학동 산69-1, 산69-15, 산78번지], 밀양 박씨, 전주 이씨[영해군파 묘역: 도봉동 산81, 산82번지 일원, 회산군 묘역: 방학동 산85-1번지, 임영대군파 오산군 묘역: 방학동 산61-1번지], 죽산 안씨[방학동 산63-1번지, 방학동 산 90번지, 방학동 산78-번지, 방학동 540번지], 진주 유씨[도봉동 산54번지], 한양 유씨[도봉동 산112~115번지], 사천 목씨[방학동 산62번지], 태안 이씨[창동 산189-1번지] 등을 들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