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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463
한자 居昌郡夫人愼氏
이칭/별칭 폐비 신씨(廢妃愼氏)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나종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72년연표보기 - 거창군부인 신씨 생
혼인 시기/일시 1488년 - 거창군부인 신씨 왕세자 연산군과 혼인
활동 시기/일시 1494년 - 거창군부인 신씨 연산군 즉위로 왕비에 봉해짐
몰년 시기/일시 1537년연표보기 - 거창군부인 신씨 졸
묘소|단소 연산군 묘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77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연산군 재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562-1지도보기
성격 왕비
성별
본관 거창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소가 있는 연산군의 왕비.

[가계]

본관은 거창(居昌). 신승선(愼承善)의 3남 1녀 중 막내이다. 할아버지는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신전(愼詮)이다. 아버지 신승선은 1468년(예종 즉위)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 공신(翊戴功臣) 3등, 1471년(성종 2)에는 성종 즉위에 공을 세워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에 녹훈된 바 있으며, 1472년 거창군(居昌君)에 봉해졌다. 세종의 4남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의 딸과 혼인하여 신수근(愼守勤)·신수겸(愼守謙)·신수영(愼守英) 3형제와 거창군부인 신씨(居昌郡夫人愼氏)를 낳았다. 시호는 장성(章成)이다.

[활동 사항]

거창군부인 신씨는 1472년(성종 3)에 태어나 1488년(성종 19) 당시 왕세자였던 연산군과 가례를 올렸다. 5남 1녀를 낳았는데, 이 중 폐세자 이황(李��), 창녕 대군(昌寧大君) 이성(李誠), 휘순 공주(徽順公主)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찍 죽었다. 1494년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왕비로 봉해졌다. 어질고 온순하여 아랫사람들을 은혜로 어루만지고 왕이 총애하는 이를 더욱 후하게 대접하였다고 한다. 연산군의 폭정이 이어지자 이를 근심하여 여러 차례 간언하여도 연산군은 이를 듣지 않았으나 성내지는 않았다. 또한 주위 사람들을 단속하여 함부로 방자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으로 인해 연산군이 폐위당하고 강화도 교동현으로 옮겨지자 따라가려 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9월 26일에는 두 아들이 함께 사사되었다. 11월 8일 연산군이 역질로 사망하자 강화도 교동에 장사지냈는데, 1512년(중종 7) 왕에게 양주 해촌(海村)으로 이장(移葬)하기를 청하였으며, 중종은 이를 허락하고 왕자의 예로 정중히 개장하도록 하였다. 1537년(중종 32) 신씨가 사망하자 중종은 연향(宴享)을 미루고 왕후(王后)의 고비(考妣)의 예로 장사지내도록 하였다.

[묘소]

우이 계곡 입구에서 방학 사거리 방향으로 방학로를 따라가면 고개를 넘어서기 전 좌측에 연산군 묘가 위치해 있다. 묘역 입구에는 재실이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총 5기의 묘가 있는데, 최상단에 있는 2기가 연산군거창군부인 신씨의 묘이다. 최하단에는 연산군의 딸 휘순 공주와 사위 구문경(具文璟)의 묘가 있다.

1512년 신씨연산군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해 달라고 요청한 이유는 이곳이 거창군부인 신씨의 외할아버지인 임영 대군의 땅이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실제 인근에 임영 대군파 오산군 묘역이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한편, 이곳에는 의정 궁주 조씨의 묘도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궁주 조씨의 제사를 임영 대군으로 하여금 받들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연산군거창군부인의 묘는 대군의 예에 의해 조성되어 묘표 2기, 혼유석 2기, 상석 2기, 향로석, 망주석, 문인석 2쌍, 장명등 2기 등을 갖추고 있다. 묘표에는 각각 ‘연산군지묘(燕山君之墓)’, ‘거창 신씨지묘(居昌愼氏之墓)’라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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