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5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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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宮淑 |
이칭/별칭 | 숙부(淑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로169길 500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우택 |
출생 시기/일시 | 149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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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28년 5월 26일 - 남궁숙 제술 시험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553년 10월 23일![]() |
부임|활동지 | 남궁숙 부임지 - 경기도 안산지 |
부임|활동지 | 남궁숙 부임지 - 경상북도 성주군 |
부임|활동지 | 남궁숙 부임지 - 황해남도 해주시 |
부임|활동지 | 남궁숙 부임지 - 전라북도 전주시 |
묘소|단소 | 남궁숙 묘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6-2![]()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함열(咸悅) |
대표 관직 | 동지중추부사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숙부(淑夫). 할아버지는 남궁순(南宮順)이며, 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남궁찬(南宮璨)이다. 어머니는 신자승(申自繩)의 딸이다.
남궁숙(南宮淑)[1491~1553]은 조선 중종 대와 명종 대에 주로 활동한 문신이다. 『중종실록(中宗實錄)』과 『명종실록(明宗實錄)』에서 남궁숙의 관직 이력과 활동상에 대한 여러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남궁숙은 안산 군수, 승정원 좌부승지, 성주 목사, 황해도 관찰사, 전라도 관찰사, 한성부 우윤, 동지중추부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 직무에 근면하여 능력이 있는 관리라는 세간의 평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남궁숙에 대한 실록의 평가는 양면적이다. 특히 남궁숙이 승진 내지 가자(加資)를 위하여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자행했다는 비난이 여러 건 실려 있다. 가령 수령으로 근무하던 안산, 성주와 황해도에서 남궁숙의 치적을 칭송하는 상소가 올라와 포상을 받았으나, 이에 대해 당대인들이 의아해하며 의도적인 여론 조작이 있었다고 여겼다는 내용도 실려 있는 것이다. 또한 일찍이 과거 급제 후 승문원에 발탁되었으나, 이것은 도제조의 개인적인 청탁에 의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발탁이 취소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중종과 명종은 남궁숙을 대체로 계속 신임하여 지속적으로 고위 관직을 제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