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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범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738
한자 徐範錫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나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2년연표보기 - 서범석 생
수학 시기/일시 1921년 - 서범석 베이징 중국대학 수학
활동 시기/일시 1924년 - 서범석 조선 일보 기자로 재임
몰년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서범석 졸
성격 정치인
성별
대표 경력 국회 의원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당선된 정치인.

[활동 사항]

서범석(徐範錫)은 1902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919년 양정 고등 보통학교 재학 중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일제 말기에는 친일적인 행보를 걸었던 인물이다.

1921년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 중국 대학 정경과에서 수학하였다. 1924년부터 1931년까지 『조선 일보』·『시대 일보』·『동아 일보』 기자로 활동하였으며, 1930년 『동아 일보』 봉천(奉天) 특파원으로 파견되었다. 봉천에서 광동 학교(光東學校)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만주사변 이후 만주에서 발행된 친일적 한국어 신문인 『만선 일보』 편집부장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 1948년에 조직된 대한 청년단에서 활동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 의원 선거에 옹진 갑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서범석은 1952년 부산 정치 파동 때 국제 공산당에 관련되었다는 혐의로 야당인 민주 국민당(民主國民黨) 의원들과 함께 투옥되기도 하였다. 이후 1958년 제4대, 1960년 제5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현재 도봉구로 편입된 성북 을 지역에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59년에는 민주당 상임 위원회 부의장을 맡았으며, 장면(張勉) 정권 수립 뒤 국회 내무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민정당(民政黨) 소속으로 출마해 성북 을구에서 당선되었다. 1965년부터는 제1야당인 민중당(民衆黨) 원내 총무로 활동하였다. 1967년 제7대, 1971년 제8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신민당(新民黨) 소속으로 출마해 성북 을구에서 당선되었고,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신민당 지도 위원을 역임하였다. 1972년의 ‘10월 유신’ 이후 정국이 혼란하자 정계를 은퇴하였으며, 1986년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 대한민국 헌정회(http://www.rokps.or.kr)
  • 한국 역사 정보 통합 시스템(http://www.koreanhistor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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