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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순교 복자 성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202
한자 103位殉敎福者聖畵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작품/미술과 공예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가 생년 시기/일시 1924년 - 「103위 순교 복자 성화」 작가 문학진 출생
창작 시기/일시 1976년~1977년 - 「103위 순교 복자 성화」 그림 제작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7년 7월 15일 - 「103위 순교 복자 성화」 제막식 개최
소장처 천주교 서울 대교구 혜화동 교회 -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58-2
성격 성화
작가 문학진
재질 유화
소유자 천주교 서울 대교구 혜화동 교회
관리자 천주교 서울 대교구 혜화동 교회

[정의]

천주교 서울 대교구 혜화동 교회에 있는, 도봉산을 배경으로 한국인 103위 순교 복자를 그린 성화.

[개설]

1976년에 박희봉(朴喜奉)[이시도로] 천주교 서울 대교구 혜화동 교회 주임 신부가 「103위 순교 복자 성화[103位殉敎福者聖畵]」를 화가 문학진[토마스]에게 의뢰하였다. 문학진은 10개월 동안 전례·역사·복식 전문가들에게서 자문을 얻어 1977년에 그림을 완성하였는데, 한국적 주체성을 살리기 위하여 김대건(金大建) 신부를 중앙에, 서양인 앵베르(Laurent Joseph Marie Imbert) 주교를 측면에 배치하였다. ‘쿠데타’로 표현될 정도로 파격적이었던 이 사건은 한국 교회 성미술의 토착화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서울 도봉산의 험준한 산세가 배경으로 펼쳐진 가운데 기쁨에 가득 차서 천국을 기다리는 순교자들이 시대와 신분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형태]

「103위 순교 복자 성화」의 크기는 285㎝×330㎝이고, 유화로 그려졌으며, 천주교 서울 대교구 혜화동 교회 제단 우측에 걸려 있다.

[내용]

자생 교회의 전통을 지닌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역사는 크고 작은 박해와 순교로 점철되었다. 특히 4대 박해로 불리는 180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 1839년의 기해박해(己亥迫害), 1846년의 병오박해(丙午迫害), 1866년의 병인박해(丙寅迫害)를 통하여 1만 명 이상이 순교하였다. 이러한 모진 박해 속에서 심산유곡(深山幽谷)에 교우촌을 이루고 견딘 덕에 훗날 신앙 자유의 날을 맞이하였는데, 「103위 순교 복자 성화」는 이러한 한국 천주교회사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문학진은 1여 년에 걸쳐 한국사 및 교회사, 조선 시대와 프랑스 선교사들의 복식, 박해와 순교 사적, 교회법과 전례에 대해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고증과 자문을 구하여 「103위 순교 복자 성화」를 완성하였다. 1977년 7월 15일에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의 제막과 축성으로 세상에 첫선을 보인 이후, 1984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의 내한을 계기로 ‘103위 순교 복자’ 모두가 성인품에 오르게 되었다.

[특징]

103위 순교 성인들은 순교 시기와 신분이 모두 달랐지만 문학진은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서 은총과 일치를 이루는 광경을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순교 복자들의 배치를 위해 대성당의 「79위 복자 성화도」[1926년, 프랑스인 쥬스타니안 제작]를 참조하였으나 중앙의 외국인 자리에 김대건 신부를, 김대건 신부의 자리에는 외국인을 옮겨 놓았다.

[의의와 평가]

한국 천주교회의 성화를 대표하는 성화로 1984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103위 성인 시성식을 계기로 한국 교회의 공식 성인화가 되었다. 심산유곡에 교우촌을 이루어 신앙생활을 했던 한국 천주교사의 상징 공간으로 도봉산이 선택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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