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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305
한자 敎育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집필자 이송란

[정의]

근세부터 현대까지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교육.

[학교 교육]

1. 조선 시대

고려 시대까지의 서울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전해주는 자료는 없다. 서울 교육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것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의 일이었다. 서울 지역에는 최고 교육 기관으로 성균관을 두고, 중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사학 외에, 초등 교육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서당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성균관과 사학, 향교로 이루어진 국가의 공적 교육 제도는 조선 중엽에 이르러 크게 약화되었고, 그 자리를 서원을 중심으로 하는 사설 교육 기관이 대신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서원은 선현을 봉사하고 자제를 교육한다는 점에서 향교와 다를 바 없는 것이었지만, 그 봉사 대상이 특정한 유학자라는 점이 달랐다. 최초로 설치된 것은 1534년(중종 38)이었다.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서원인 도봉 서원[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511-31번지]은 1573년(선조 6) 조선 시대 서원 중 아홉 번째로 설립된 것으로써, 청주 죽수 서원과 함께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를 봉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유학자들이 이곳에서 유학에 정진함으로써 한 때 전국 서원의 중심적 지위를 점하였다. 1775년(영조 51)에는 다시 어필 사액을 받아 서울은 물론 경기도 양주, 포천, 파주 등지 선비들의 학문적, 사상적 중심지로서 구실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 서원이 남설되는 경향을 보임으로써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야기되자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은 1871년 도봉 서원 역시 철폐하였다.

2. 개화기

1876년 일본과의 수호 조규 체결을 계기로 한국의 전통 사회는 서구의 문물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교육 부문에 있어서도 새로운 제도와 체제를 주체적으로 소화, 흡수하는 문제로 귀결되었다. 1887년(고종 24) 성균관에 경학원을 부설하여 귀족 자제들의 교육 기관으로 삼아 개항 이전부터 이미 그 위상이 심각하게 저하된 상태에 있던 문제를 극복하려 하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동도서기적 사고로 구태의연한 교육 내용을 답습하는 경학원 교육은 이윽고 흐지부지되었다.

성균관 교육의 강화를 위한 시도가 재차 기울여진 것은 1892년경부터였다. 1899년 4월 27일에는 고종이 조서를 내려 성균관 교육 기능을 강화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전통 교육 기관이 여러 차례의 부흥 시도에도 불구하고 소멸해 갔던 반면, 신식 교육 기관은 속히 늘어났고, 그 수요층도 늘어났다. 명실상부한 최초의 근대적 교육 기관은 1886년에 설립된 육영 공원이었다.

한편 이 무렵부터 외국인 선교사에 의한 학교 설립도 시작되어 1885년에는 서양의 의료 기관인 광혜원에서 의학 교육이 부분적으로 실시되었고, 1886년에는 배재 학당, 이화 학당, 경신 학교의 3대 기독교계 학교가 각각 아펜젤러, 스크랜턴 부인, 언더우드에 의해 설립되었다. 1895년 2월에는 「교육 조서」를 만들어 경서 위주의 교육을 헛된 교육이라 하고 시대 정세에 눈뜨게 하는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근대적 교육을 천명하였다. 이 조서의 지침에 따라 본격적인 근대 교육 체제가 자리 잡게 되었다.

1895년 4월에는 한성 사범 학교 관제가 반포되었고 서울 교동에 한성 사범 학교가 설립 되었다. 같은 해 8월에는 장동, 정동, 계동, 묘동 소학교가 각각 개교하였다. 소학교 관제에 이어 중학교 관제도 1899년 4월 제정되었다. 직후에 화동에 한성 중학교가 설립되었다.

정부에 의한 관립 학교가 속속 설립되는 와중에서 민간인에 의한 사립 학교 설립도 급속히 확대되었다. 1895년 민영환이 흥화 학교를 설립한 것을 필두로 하여, 대한 제국기에는 이용익, 민영기, 민영휘, 엄주익, 엄준원 등 주로 고종의 측근 관료들이 보성 학교, 중교 의숙, 휘문 의숙, 양정 의숙, 진명 여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그런데 당시의 사립 학교는 일진회계의 몇몇 학교를 제외하면 모두가 민족의 자각과 자강을 기본 교육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일제의 교육 정책과 정면충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을사조약 이후 한국의 국권을 사실상 침탈한 일제는 1908년 칙령으로 사립 학교령과 학회령을 발표하여 사립 학교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하였다.

3.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의 교육은 표면적으로는 근대 교육을 표방하였으나 내실에서는 근대 교육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조선 총독부는 교육의 기본 목표를 ‘충량한 황국 신민’을 양성하는데 두었으며 우민화를 위한 교육 정책을 펼쳤다. 조선 총독부의 대한 교육 방침이 최초로 구체화된 것은 1911년의 「조선 교육령」에서였다. 일제 강점기의 학제는 보통학교[3~4년], 고등 보통학교[4년], 여자 고등 보통학교[3년], 실업 학교[2~3년], 간이 실업 학교, 전문학교[3~4년]의 체제로 이루어졌다. 상대적으로 통제가 약하여 한국인이 많이 진학하던 사립 학교에 대해서는 1911년 「사립 학교 규칙」을 따로 공포하여 학교의 설치 목적, 교장 취임, 교과 도서 채택 등을 인가제로 하였다.

일제의 강압적인 교육 정책은 3·1 운동으로 식민지 지배 체제가 위기에 봉착함으로써 다소 완화되었다. 이에 따라 1922년에 「개정 교육령」이 발포되었다. 3·1 운동 이후의 교육 부문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대학이 설립되었다는 점이다. 1920년대의 민족 지도자들은 활발한 민족 계몽, 실력 양성 운동을 외치면서 민립 대학 설립운동 벌여 나갔다. 이에 총독부는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을 약화시키는 한편, 식민지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학생들의 교육 수요도 만족시킬 필요에서 변칙적인 「경성 제국 대학」 설립 안을 마련하였고 1924년에는 경성 제국 대학 예과가 신입생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우리 민족의 교육에 대한 열망은 야학 운동으로 번져 나갔고, 일제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제한적이나마 각지에 보통 교육 기관을 증설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30년에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관내에 공립 창동 보통학교가 설립된 것은 이러한 사정에 따른 것이었다.

일제의 대한 교육 방침은 1937년의 중일 전쟁 발발과 아울러 학교를 민족 말살 정책의 중심 추진 기관으로 삼으려는 것으로 다시 한 번 일변하였다. 일제 침략기의 학교 교육이 기본적으로 식민지 노예 교육, 민족 말살 교육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교육 기능은 오히려 사립 학교와 사교육 쪽에서 담당해야 하였다.

개화기 일부 개명 관료와 민족주의적 지식인들에 의해 설립된 보성 학교, 중앙 학교, 양종 학교, 휘문 학교 등의 사립 학교는 물론 외국인 선교사들이 설립한 선교계 사립 학교들도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공립 학교의 식민지 노예 교육과 구분되는 민족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일제 강점기 서울 교육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야학 등의 사교육 기관이었다.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관내에 있는 덕성 여자 대학교도 1920년의 여자 야학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4. 광복 이후

해방 직후의 교육 정책은 일단 미군정에 의해 마련되었다. 미군정청은 일본식의 복선형 학제를 폐기하고, 그 대신 미국식의 단선형 학제를 실시하였다. 교육 정책이 틀을 잡아가는 한편 학교 설립도 급속히 확대되었다. 1945년 해방 당시 시내에 40개소 밖에 없던 중등학교는 이듬해 1월 55개교로 증가하였고, 같은 무렵 초등학교는 71개교로 늘어났다. 종래의 전문학교가 대학으로 승격되는 한편 신설 대학의 설립도 본격화되어 보성 전문학교, 연희 전문학교, 이화 여자 전문학교, 혜화 전문학교 등이 각각 고려 대학교, 연세 대학교, 이화 여자 대학교, 동국 대학교 등으로 인가되었으며 국민 대학교, 신흥 대학교[후의 경희 대학교], 단국 대학교, 가톨릭 대학교, 국학 대학 등이 신설되었다.

1948년 7월 17일의 헌법 공포, 8월 15일 정부 수립을 계기로 교육 주권 역시 새 정부의 손으로 넘어왔다. 그러나 새 정부의 교육 정책이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한반도 전역은 6·25 전쟁의 참화를 입게 되었다. 교육 체계가 재정비되고 교육의 급격한 성장이 이루어진 것은 196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1960년대 초부터 시작된 경제 개발 계획 5개년 계획과 함께 국가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하였고, 그에 병행하여 교육 수요도 급증하였다.

이 무렵 서울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98.5%였다. 1960~70년대는 시내 학생 수의 증가와 학교 수의 증가 등 교육의 양적 팽창이 지속된 시기였다. 1970년대까지의 고도성장 시대를 특징짓는 현상 중 하나였던 서울로의 인구 집중 추세는 1970년대 말부터 강력히 추진된 수도권 인구 분산 정책, 경제 구조의 전반적 변동과 상대적 안정화 등의 영향으로 1980년대에 들어와 크게 약화되었다. 1980년대에는 또한 고등학교에서의 과도한 대학 진학 경쟁과 그에 따른 학교 교육의 파행화, 고액 과외에 따른 사회적 위화감의 심화와 같은 문제에 대한 대처 방안이 다양하게 마련되었다.

1990년대의 서울 교육은 대체로 1980년대의 성과와 한계를 그대로 인계한 상황에서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1990년대의 교육의 발전은 오히려 학교 교육보다는 사회 교육 측면에서 두드러졌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방 자치제가 전격적으로 시행되고, 교육 자치도 확대되었다.

[사회 교육]

한국의 「사회 교육법」은 1982년에 제정된 사회 교육을 ‘다른 법률에 의한 학교 교육을 제외하고 국민의 평생 교육을 위한 모든 형태의 조직적인 교육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각 급 정부 기관 및 공공 단체와 각 산업체 및 사회단체에서 실시하는 각종 교육 사업을 통틀어서 사회 교육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사회 교육은 학교 교육 다음으로 이어지는 평생 교육을 지칭할 수 있다.

평생 교육 기관 현황은 각 동마다 위치한 주민 자치 센터 14개소와 지역 주민을 위한 지식 정보 제공 및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제공하는 도봉 도서관 1개소 그리고 여성 복지 증진, 여성의 사회적 지원 체제를 위한 여성 복지 시설 8개소와 청소년 문화 예술 쉼터 공간으로의 기능을 하는 어린이·청소년 시설 6개소, 시민 정보화 교육 기관 3개소 등이 설립되어 있다.

도봉구청과 연계하여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기관을 대상으로 평생 교육 기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교육 대상을 기준으로 성인 프로그램, 어린이·청소년 프로그램, 유아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다. 영역별로는 건강·체육 프로그램, 음악·미술 프로그램, 언어 프로그램, 재테크 프로그램, 여성·취미 프로그램, 문화·문학 프로그램, 직업·자격증 프로그램, 어린이·청소년 프로그램, 유아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민 자치 센터 프로그램은 주간에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취미 위주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주민 자치 센터가 중복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건강 관련 프로그램은 요가, 단전, 탁구, 에어로빅 등이 있고, 취미 관련 프로그램은 댄스, 노래, 서예, 미술, 사물놀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지관 프로그램은 취약 계층과 노인을 대상으로 기초 학습, 건강, 취미 위주의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있으며 주로 요가, 댄스, 노래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문화센터 및 기타 기관 프로그램은 취미, 건강, 학습 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육 대상이 다양하고 프로그램으로는 댄스, 요가, 노래, 공예, 색종이, 사군자, 한문, 천연 화장품, 동화 구연 등으로 비교적 다양하다.

[평생 교육]

서울특별시 도봉구는 평생 학습 도시를 조성하여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정신적 풍요를 함께 향유하며 교육과 생태를 통해 모든 세대가 행복하며 교육과 생태가 조화를 이루는 그린피아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08년 12월 평생 학습 프로그램 종합 안내서를 제작하고 2009년 11월 평생 교육사를 채용하였다. 2010년 1월 도봉구 평생 교육 종합 발전 계획을 수립하였고 5월 서울시 평생 교육 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었다. 2011년 3월 서울시 평생 교육 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었으며 11월 도봉구 평생 교육 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도봉구 평생 학습 도시 추진은 도봉구청 교육 진흥과 평생 학습팀이 전담하고 있다. 관내 평생 교육 기관·단체 및 학교의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평생 학습 프로그램 지원을 위해 ‘도봉구 우수 평생 학습 프로그램’을 공모하고 있다.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평생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으로 쌍문 1동 자치 회관, 쌍문 2동 자치 회관, 쌍문 3동 자치 회관, 쌍문 4동 자치 회관, 방학 1동 자치 회관, 방학 2동 자치 회관, 방학 3동 자치 회관, 방학 3동 문화 센터, 창 1동 자치 회관, 창 2동 자치 회관, 창 3동 자치 회관, 창 4동 자치 회관, 창 5동 자치 회관, 도봉 1동 자치 회관, 도봉 2동 자치 회관 등의 동 자치 회관이 있다.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평생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복지관으로는 도봉 서원 종합 사회 복지관, 방아골 종합 사회 복지관, 창동 종합 사회 복지관이 있다. 노인 복지 센터로는 도봉동 노인 복지 센터, 방학동 노인 복지 센터, 쌍문동 노인 복지 센터, 창동 노인 복지 센터, 시립 도봉 노인 종합 복지관이 있다. 청소년 프로그램 운영 기관으로는 쌍문동 청소년 랜드, 쌍문동 청소년 문화의 집, 창동 청소년 문화의 집, 시립 창동 청소년 수련관이 있다. 도서관으로는 도봉 도서관, 도봉 문화 정보 센터, 도봉 어린이 문화 정보 센터, 학마을 다사랑 센터가 있다.

문화·가족 프로그램 운영 기관으로는 도봉 문화원, 도봉구 다문화 가족 지원 센터, 도봉 구민 회관, 창동 스포츠 문화 콤플렉스, 도봉구 건강 가정 지원 센터가 있다. 여성 프로그램 운영 기관은 도봉 여성 센터가 있으며 박물관·기타 프로그램 운영 기관에는 옹기 민속 박물관, 도봉 환경 교실, 도봉구청 구민 정보화 교육, 덕성 여자 대학교 박물관, 덕성 여자 대학교 언어 교육원, 도봉 숲속 마을 등이 있다. 평생 학습 프로그램 사이버 학습을 실시하는 사이트로 도봉 에듀피아, 도봉구 e-사이버 평생 학습 센터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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