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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566
한자 婚禮
이칭/별칭 결혼식,혼인식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집필자 육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평생 의례
의례 시기/일시 수시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혼인과 관련하여 행해지는 일련의 의례.

[개설]

혼례 는 한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 가정을 꾸밀 때 올리는 의례이다. 이를 혼인식, 결혼식 등이라고도 한다. 혼례는 일정한 의식을 거행하여 남녀 간의 육체적·정신적 결합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의례이다. 혼례는 양의 시간인 낮과 음의 시간인 밤이 만나는 저물 무렵에 행했기 때문에 ‘혼(昏)’ 자를 써서 혼례라 했다. 혼인은 남녀 각 개인의 결합이기도 하지만 두 가족의 결합이기도 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가족 간의 결합이라는 특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혼례의 절차적 특성을 강조했다.

[연원 및 변천]

혼례 의 형성, 변화, 발전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삼국 시대에는 불교식의 화혼례(花婚禮)가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혼례 과정에서 사주, 택일, 송복(送服)과 함 보내기 등은 비록 조선 시대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예로부터 존재했을 것이다.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東夷傳)에 따르면 혼례를 신부 집에서 치렀으며, 신부가 아이를 낳아 성장한 후에 비로소 시가로 간다고 되어 있다. 이를 통해 삼국 시대에 이미 신랑의 초행(醮行)·재행(再行)이 있었으며, 신부의 우귀(于歸)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무 기러기를 놓고 신랑이 절을 하는 전안지례(奠雁之禮) 또한 동북아시아에 널리 분포된 풍속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신랑을 다루는 동상례(東床禮), 폐백으로 불리는 현구례(見舅禮)도 역시 삼국 시대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후기에는 주자(朱子)의 『가례(家禮)』를 수용하여 혼례가 보다 체계화하였다. 앞대의 여러 예법을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하도록 『사례편람(四禮便覽)』이 저술되었고, 여기에 “남자는 16세부터 30세 사이에 장가가고, 여자는 14세부터 20세 사이에 시집간다.”고 하였다. 또한 “동성동본(同姓同本) 불혼으로 동성의 혈족 간에는 혼인할 수 없었고, 상중에는 금혼(禁婚)”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후의 혼례에 관한 예법은 『사례편람』에 근거하여 행해지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서구의 혼례 문화에 영향을 받아 전통적인 혼례가 차츰 줄어들고 신식 결혼식이 유행하였다. 1890년대의 ‘예배당 결혼’을 기점으로 신식 결혼식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는데, 1934년 조선 총독부에서 「의례 준칙」을 발표하고, 그리고 1961년의 「의례 준칙」, 1969년의 「가정의례 준칙」 등이 제정되어 전통 혼례가 변화하였다.

[절차]

실제 관행상 행해지던 전통적 혼례 절차는 크게 의혼(議婚), 대례(大禮), 후례(後禮) 등으로 구분된다. 의혼은 혼인 양가가 중매인을 통해 혼인할 의사를 조절할 때부터 대례를 행하기 전까지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납채(納采), 연길(涓吉), 송복, 납폐(納幣) 등이 포함된다. 납채는 신랑 측 혼주가 처음 신부 측에 편지를 보내는 것을 말하며, 연길은 신부 측에서 신랑 측에 택일단자(擇日單子)를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송복은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예물을 보내는 것이며, 납폐는 납폐서(納幣書)와 폐백(幣帛)을 신부 집에 보내는 의식을 말한다.

대례는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행하는 모든 의례를 말한다. 초행, 전안지례, 교배지례(交拜之禮), 합근지례(合卺之禮), 신방(新房), 동상례로 구성된다. 초행은 신랑과 그 일행이 신부 집에 가는 것이며, 전안지례는 신랑이 신부의 혼주에게 기러기를 전하는 의례를 뜻한다. 교배지례는 신랑과 신부가 마주 보고 절하는 의례이며, 합근지례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 술잔을 나누는 의례이다. 신방은 신랑과 신부가 잠자리를 함께 하는 것이며, 동상례는 다음 날 신부 집의 젊은이들이 신랑의 발바닥을 때리는 풍속을 말한다.

후례는 신부가 신랑 집으로 오는 의식과, 신랑 집에 와서 행하는 의식을 말한다. 우귀, 현구례, 근친(覲親) 등으로 구성된다. 우귀는 신부가 시집으로 오는 것을 말하는데 신행(新行), 혹은 우례(于禮)라고도 한다. 혼인 당일 우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사흘 뒤에 가는 3일 우귀(三日于歸)도 있었다. 이 밖에 몇 달 만에 우귀하는 경우, 해를 넘겨서 우귀하는 경우도 있었다. 보통은 해를 넘겨서 우귀하는 해묵이가 많았다. 해묵이를 하면 신랑이 신부 집에 다니러 갔는데 이를 재행이라 하였다. 현구례는 신부가 시부모와 시가의 사람들에게 절을 하는 것을 말하며, 폐백이라고도 한다. 근친은 신부가 시집에 와서 생활하다가 처음으로 친정에 가는 것을 말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관혼상제의 의례는 지역에 따른 차이가 별로 없다. 혼례는 현대에 들어서는 결혼 산업의 발달 및 예식장 결혼의 보편화 등으로 지역차가 더 없어졌다.

근래의 결혼식은 신랑은 양복을, 신부는 드레스를 입고 진행한다. 전통 혼례의 의혼에 해당하는 과정이 현대에는 많이 변하였다. 중매 없이 연애를 통해 혼인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혼인이 결정되면 신랑 측에서 사주를 보내고, 신부 집에서는 택일을 한다. 이후 예물을 준비하고 결혼식 전에 함을 보낸다. 대개 신랑 친구가 함을 지는데, 신부 집에서 성대한 대접을 받게 된다. 결혼식은 주례가 주관하여 예식장에서 진행한다. 하객들은 축하금(祝賀金)을 접수부에 내며,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신부가 「결혼 행진곡」에 맞추어 퇴장을 하고, 행진이 끝나면 기념사진을 찍는다.

1993년에 채록된 도봉구 방학동 주민 민정기의 사례에 의하면, 33세 때에 24세의 여자와 연애를 통해 결혼했다. 궁합은 조부가 미신이라고 못 보게 하였으며 납채와 납폐, 택일 등 전통적인 절차를 밟았고, 혼례식은 예식장에서 신식으로 하였다. 혼인 당일 신랑 집으로 우귀하였으며, 당일 사당 참례를 하고 시부모에게 폐백을 올렸다. 이렇게 전통 혼례가 변형된 모습을 살필 수가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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