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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에서 5리를 더 가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641
한자 -五里-
이칭/별칭 「가오리 마을 유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강경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79년 5월 6일 - 「궁궐에서 5리를 더 가라」 이능구에게서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0년 - 「궁궐에서 5리를 더 가라」 『한국 구비 문학 대계』1-1 서울특별시 도봉구편에 「가오리 마을 유래」라는 제목으로 수록
관련 지명 가오리 - 서울특별시 도봉구 수유동
성격 민담|지명 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성종 대왕
모티프 유형 오리를 더 가서 잡은 묫자리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수유동[현재 강북구 수유동]에서 ‘가오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궁궐에서 5리를 더 가라」성종 대왕의 어명에 따라 5리(里)를 더 가서 장사를 지냈다고 하여 ‘가오리(可五里)’라고 불렀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0년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 구비 문학 대계』1-1 서울특별시 도봉구편에 「가오리 마을 유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는 1979년 5월 6일, 도봉구 수유 1동 화계 노인정에서 주민 이능구(李能九)[남]에게서 조사·채록한 것이다.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해 묻던 중, 수유동과 우이동 사이에 있는 가오리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제보자가 조상과 관련된 일이므로 그 유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본 설화를 제공하였다.

[내용]

미아리 인창 학교에서 올라가면 그곳이 가오리이다. 왜 ‘가오리’가 되었냐 하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보자의 17대조 선조의 묘를 가오리에 모셨는데, 계축년에 돌아가셨다. 그해는 성종 대왕 때였는데, 예종 대왕이 여덟 달만에 돌아가시자 성종 대왕이 9월에 즉위를 하였는데, 그해 섣달에 제보자의 17대조의 장사를 지내게 되었다. 장사를 지낸 곳이 아리랑 고개, 미아리 고개의 마루 근처이다. 신흥사 앞에 산소 자리를 잡아서 작광(作壙), 즉 땅을 파 무덤을 만들었는데, 장사를 지낼 때 축회(築灰)[장사 지낼 때에 구덩이의 주위에 석회를 넣고 다짐] 소리가 성종 대왕이 있는 창경궁 대궐까지 들렸다.

그러자 성종 대왕이 궐내에 들리는 소리가 무엇이냐 물었고, 17대조와 성종 대왕은 재당숙 지간이었기에 궐내에 그 축회하는 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하고는 가오리, 즉 오리(五里)를 더 가도록 하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자 축회를 중지하고 지금의 미아리 중간, 즉 인창 학교 부근에 자리를 잡고 축회를 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궁궐에서 5리를 더 가라」의 주요 모티프는 ‘오리를 더 가서 잡은 묫자리’이다. 「궁궐에서 5리를 더 가라」는 17대조 조상의 장사를 지낼 때 축회 소리가 창경궁까지 들리자, 이를 애석하게 여긴 성종 대왕이 오리를 더 간 지역에 장사를 지내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했음을 밝히는 지명 유래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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