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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봉산에 있을 때 자익과 사경 등 여러 사람이 삼각산을 유람하기 위해 묘봉암으로부터 와서 모이기로 약속하였는데, 이날 비가 와서 그들이 오지 못하였다. 우두커니 앉아 기다리다가 섭섭한 나머지 짓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736
이칭/별칭 余之在道峰也。子益與士敬諸人。爲三角之游。約自妙峰菴來會。是日雨作不果。至凝佇之久。悵然有作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안정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651년 - 「내가 도봉산에 있을 때 자익과 사경 등 여러 사람이 삼각산을 유람하기 위해 묘봉암으로부터 와서 모이기로 약속하였는데, 이날 비가 와서 그들이 오지 못하였다. 우두커니 앉아 기다리다가 섭섭한 나머지 짓다」 저자 김창협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682년연표보기 - 「내가 도봉산에 있을 때 자익과 사경 등 여러 사람이 삼각산을 유람하기 위해 묘봉암으로부터 와서 모이기로 약속하였는데, 이날 비가 와서 그들이 오지 못하였다. 우두커니 앉아 기다리다가 섭섭한 나머지 짓다」 창작
저자 몰년 시기/일시 1708년 - 「내가 도봉산에 있을 때 자익과 사경 등 여러 사람이 삼각산을 유람하기 위해 묘봉암으로부터 와서 모이기로 약속하였는데, 이날 비가 와서 그들이 오지 못하였다. 우두커니 앉아 기다리다가 섭섭한 나머지 짓다」 저자 김창협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709년 - 「내가 도봉산에 있을 때 자익과 사경 등 여러 사람이 삼각산을 유람하기 위해 묘봉암으로부터 와서 모이기로 약속하였는데, 이날 비가 와서 그들이 오지 못하였다. 우두커니 앉아 기다리다가 섭섭한 나머지 짓다」 가 수록된 『농암집』 간행
배경 지역 도봉산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지도보기
배경 지역 도봉 서원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지도보기
성격 한시|칠언 율시
작가 김창협(金昌協)

[정의]

1682년 봄 김창협도봉 서원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함께 산행을 하기로 하였던 동생과 조카를 기다리다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개설]

“가을에 딱섬[楮島]으로 가기 위해 지나가는 배에 오르니 배 안에 늙은 선비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홍천(洪川) 진사 남궁원(南宮垣)이었다. 일찍이 임술년[1682] 가을에 도봉 서원(道峯書院)에서 함께 공부하다가 그해에 나는 문과에 급제하고 그 친구만 혼자 낙방했는데, 이제 또 제생(諸生)을 따라 상경한 것이었다. 즉흥으로 절구 한 수를 지어 그에게 주다[『농암집』 권4]”에 따르면 김창협(金昌協)은 1682년(숙종 8) 도봉 서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 김창협의 아우 김창흡(金昌翕)[자익(子益)]과 조카인 김시보(金時保)[사경(士敬)]는 도봉산의 암자인 묘봉암에 있으면서 함께 산행을 하기로 하였는데 비가 와서 두 사람이 오질 못하자 아쉬운 심정을 표현하였다.

[구성]

7언 8구의 한시이다. 1구와 2구는 저녁 무렵 노을이 걸린 도봉산 봉우리를 묘사하며 종일 기다린 작자의 마음을 표현하였고, 3구와 4구에서는 반가워야 할 봄비가 도리어 산행의 약속을 이루지 못하게 한 원인이 되었음을 나타냈다. 5구와 6구에서는 봄날 도봉산의 풍광을 묘사하였고, 7구와 8구에서는 비로 인해 함께하지 못함을 아쉬워하고 있다.

[내용]

萬丈峯頭西日照(만장봉두서일조)[만장봉 꼭대기에 저녁 햇살 비치는데]

冥冥雲氣散猶遲(명명운기산유지)[먹구름 흩어지기 어이 저리 더디는고]

好雨不應愁客意(호우불응수객의)[단비는 객의 마음 헤아릴 리 있으랴]

春山無那有佳期(춘산무나유가기)[봄산은 유람 언약 모른들 그 어떠리]

隔林黃鳥空千囀(격림황조공천전)[숲속의 꾀꼬리는 부질없이 꾀꼴꾀꼴]

近水桃花亦一時(근수도화역일시)[물가의 복사꽃도 한철이라 울긋불긋]

把酒吟詩唯爾待(파주음시유이대)[그대들 모여들어 술잔 들고 시 읊으며]

攀蘿跂石摠相思(반나기석총상사)[덩굴 잡고 바위 탈 일 그리울 뿐이로세]

[특징]

운자(韻字)는 ‘지(支)’ 운(韻)의 지(遲)[2구], 기(期)[4구], 시(時)[6구], 사(思)[8구]이다.

[의의와 평가]

김창협은 이 시의 저작 연도인 1682년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는데, 이 때 과거시험 준비를 위해 도봉 서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듯하다. 화창한 봄날을 맞아 마침 찾아오는 동생, 조카와 함께 잠시나마 시험공부에서 벗어나려 하였는데 비로 인해 오지 못하자 아쉬운 마음을 시로 표현하였다. 이 시의 뒤에 이어지는 ‘다음날 자익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오다[翼日子益與諸人至]’에서는 이튿날 기다리던 동생과 조카가 도봉 서원에 도착하여 그들과 함께 무대에서 정겹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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