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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판에 새긴 시대의 불꽃, 오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900
한자 木版-時代-吳潤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6년 4월 13일 - 오윤 출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6년 7월 5일 - 오윤 사망

[개설]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거주하였던 오윤(吳潤)[1946~1986]은 1980년대 한국 민중 미술 운동의 상징적 존재로, 특히 목판화 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 오윤은 신분, 부귀, 성별,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어 평등과 상생으로 활력이 넘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미술이 일정 부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다수의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하여 복제가 가능한 판화를 매체로 선택하였고, 강렬하고 표현적인 칼 선으로 민중의 혁명성을 부각시켰다.

오윤이 살았던 도봉구는 일제 강점기에 ‘창동의 세 마리 사자’로 불리던 김병로, 송진우, 정인보가 일제의 압제를 피해 머물렀던 곳이며, 이후에도 함석헌, 전태일, 계훈제, 김근태 등 사회운동가들이 계속적으로 거주하였다. 또한 일제 강점기 홍명희문예봉, 현대의 김수영에 이르기까지 민중 예술가들의 거주지이기도 하였다. 오윤의 진보적 사고와 예술 활동은 도봉구의 지역적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하겠다.

[예술가라면 무당이어야 한다]

“저는 예술가라면 무당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들 얼마나 근사한 무당들인가가 문제이고, 얼마나 우리를 울려 주고 감동시키느냐가 문제지요. 무당만큼 울려 주고 감동시켜보라 이겁니다.”[오윤]

오윤이 미술가로 첫발을 내디디면서 가졌던 물음은 미술이 언어 기능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어떻게’에 대한 고민이었다는 점에서 ‘미술이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이미 얻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 글의 서두에 인용한 오윤의 ‘예술가 무당론’에서 오윤이 어떤 길을 선택하였는지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다. 무당이 인간과 신을 연결시키는 영매의 역할을 한다면 예술가는 영감을 통해 미지의 것과 교감한다. 원시 시대에는 무당이 예술가 역할을 하였고, 가까운 예로 백남준(白南準)은 친구 요셉 보이스의 혼과 교접하기 위해 TV 굿판을 벌인 바 있다.

백남준처럼 실제로 굿판을 벌이고 춤을 춘 것도 아닌데 오윤이 ‘무당 예술가’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유는 ‘예술가는 무당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서라기보다는 억울하고 슬픈 사람들, 한을 풀지 못한 혼령들과 교접하여 위무하는 살풀이의 기운이 오윤의 전 작업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모순을 상상력을 동원한 4차원적 차원으로 해체하는 방식 때문에 오윤의 작업을 리얼리즘으로 분류할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도 있다. 그러나 4차원적 세계관을 넘나드는 상상력으로 인해 오윤 작업이 최절정에 이르게 되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상투성을 넘어선 민중의 도상을 그리다]

근사한 무당 예술가가 되고자 오윤이 잡은 것은 목판과 칼이었다. 테라코타 조각이 나 유화를 그리기도 했지만 오윤 작업의 본처(本處)는 목판화이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작품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복제가 가능한 판화를 택함으로써 그 수만큼 소통의 길을 넓게 열고자 하였으며, 목판화의 간결한 선묘와 투박한 칼 맛으로 사람들의 감성에 직접 부딪쳤다. 민중적·표현적 특성이 강한 목판화야 말로 오윤이 갈구하는 ‘소통’에 가장 적합한 매체였던 것이다.

오윤의 판화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한 많은 세월에 가슴앓이가 깊어진 가난하고 고달픈 사람들이었다. 6·25 전쟁 통에 아들을 잃고 남편을 잃은 여인, 나라를 구한다고 다리 한 쪽, 손 한 쪽을 바쳤어도 돌아온 것은 허망한 세월뿐인 남자, 노동으로 단련된 근육질 총각의 슬픈 뒷모습, 가족을 지키는 일념으로 사는 아비와 어미, 언제나 허기진 위장 탓에 밥 한 그릇이 하늘같은 사람들이다. 김수영이 표현했듯이 몰아치는 바람에 풀처럼 누워 울다가 다시 바람보다 빨리 일어나는 민초들, 험한 역사의 맨 앞에서 가장 먼저, 가장 세게 바람을 받는 그런 사람들은 오윤의 판화 속에서 볼이 푹 팰 정도로 야위었으나 뼈가 굵고 손과 발이 크고, 이마에는 주름이 깊고 광대뼈가 튀어나왔으며, 각진 턱과 부리부리한 눈매로 도상적 전형성을 갖추고 있다.

「바람 부는 곳」이나 「애비」와 같은 작품은 다가올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지키려는 가장(家長)의 심리를 강열한 선묘의 충격으로 전달하고 있다. 등장 인물들의 계급적 성격, 그들이 처한 상황 및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면서도 인간의 내면에 집중함으로써 프로파간다(Propaganda)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인데, 이로써 상투적이지 않은 전형성, 특수성을 아우르는 보편성, 소서사를 품은 거대 서사로 진입할 수 있었다. 오윤의 판화가 민중 미술을 대표하는 위상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전형성 확보와 동시에 전형성이 빠지기 쉬운 상투성을 넘어섰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춤추는 사람들]

오윤의 작품에서 ‘춤’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아라리요」나 「춤Ⅱ」 등 흐트러진 머리에 눈을 감고 춤을 추는 여인의 얼굴과 몸짓 주위에는 원혼과 교접하는 순간의 귀기(鬼氣)가 감돌며, 힘껏 뛰어올라 북을 울리는 북춤 추는 남자, 삿된 기운과 사회 악을 단 칼에 베어 버리는 칼춤 추는 남자에게서는 범접이 어려울 정도로 혁명적 기운이 발산되고 있다. 이들은 억압받는 계층이면서도 사회적·계급적 모순을 자각하는 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역동적 주체로 등장한다.

춤추는 사람들이 이처럼 강력한 기념비적 효과와 표현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오윤의 독자적인 양식적·기법적 효과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단독상을 그림의 정 중앙에 배치하되, 배경을 생략함으로써 주제 의식을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표출시키는 방식은 조선 시대 김홍도(金弘道)와 같은 풍속화가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 형식이다. 오윤은 여기에 더하여 목판화의 굵고 날카로운 칼 맛으로 표현적 효과를 높였다. 한국 춤의 특징인 정중동(靜中動) 미학의 형상화가 오윤의 춤 그림이 성공하게 된 요인으로 많이 논해지는데 비해서 춤 그림에 소리가 동반된다는 점은 부각되지 못했다.

「북춤」, 「징」, 「칼 노래」, 「강쟁이 다리쟁이」 등 춤 그림은 제목 자체에 소리가 매개되어 있다. ‘춤만으로는 부족하고 사설이 필요하다’는 메모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오윤의 춤 그림에서 텍스트와 소리는 매우 긴요한 요소가 된다. 인물의 주위를 둘러싸며 소리의 크기와 리듬에 따라 선과 면의 레이아웃 형태나 말풍선 꼬리표를 첨가함으로써 전달력과 호소력이 크게 배가되었다.

[해학의 힘]

「형님」에서 오윤은 양푼, 주발, 젓가락 두드리는 소리에 맞추어 어우렁더우렁 춤추며 이렇게 노래한다. “시름 지친 잔주름살 환히 펴고요. 형님 우라질 것 놉시다요. 도동동당동.” 그런데 막상 노래하며 춤추는 아우의 이마에는 주름살이 가득하다. 다만 히죽거리며 웃는 얼굴에 ‘시름 지친 잔주름’은 환히 펴진 듯 굵은 주름만 가득하니 보는 사람이 절로 웃음이 난다. 오윤 판화 중 가장 인기가 높은 「도깨비」에는 ‘백수한산 심불로(白首寒山 心不老)’라 화가의 처지와 심경이 밝혀져 있다. 백수 생활이 힘들었던 오윤이 대낮에 도깨비들을 불러들인 듯, 막걸리를 들이키며 거방지게 놀아나는 광경이 유쾌하다.

권력자 양반들을 호되게 골탕을 먹이면서도 왠지 약자들에게는 계속 당하기만 하는 바보 같은 ‘도깨비’, 놀고먹는 ‘백수’ 모습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으니 더불어 놀고 싶을 지경이다. 진도에서 민중 연희를 찾아다니고 육자배기와 북춤을 배우며 오윤이 깨달은 바가 있다면 신명 나는 한판의 춤과 놀이의 효과, 즉 시름과 고달픔을 이겨내게 하는 신묘한 치유력인 ‘심불로(心不老)’였다.

[오윤, 대동 세상을 꿈꾸다]

오윤이 꿈꾼 이상 세계는 대동 세계이다. 신분, 부귀, 성별,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어 평등과 상생으로 활력이 넘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사람이 천지 만물과 융합하여 한 덩어리가 된다. 「춘무인추무의(春無仁秋無義)」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줌마, 처녀, 총각들이 풍물놀이패들과 함께 어깻짓, 손짓, 몸짓으로 신명나게 춤을 추는 장면을 취하였다. 하늘의 뜻에 따라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수확을 하니 이보다 즐거울 수가 있겠는가. 천지의 융합은 태극의 운행을 따라 ‘S’ 자로 이어지다 다시 원을 이루며 휘돈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화평 세상을 오방색으로 펼쳐낸 「통일 대원도」는 남과 북의 통일을 기원하는 주제 의식이 매우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풍물패와 어울려 춤을 추는 사람들은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백색 한복을 입고 역시 큰 ‘S’ 자 곡선을 이루며 휘돌아간다. 「춘무인 춘무의」의 춤꾼들이 얼굴이 아니라 덩실거리는 몸을 드러내는 데 비해서 「통일 대원도」에서는 밝고 해맑게 웃는 얼굴이 부각되었고 한민족 기원 신화의 주인공인 곰과 호랑이도 춤을 춘다. 대립과 분쟁이 없는, 평등하고 화평한 대동 세상은 인류 역사 상 아직 실현된 바 없다.

다만 봄에 씨를 뿌렸으니 가을의 수확을 기대하는 농군의 마음으로 새 세상을 기원할 뿐이다. 그리고 온 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시인 김수영이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 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 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고 했듯이 온 몸으로 ‘죽음’의 세계에 저항하며 스스로를 해방시킬 때에 대동 세상의 실현은 조금 더 가까워지는 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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