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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오억령이 도봉 서원의 사우를 두고 지은 상량문. 「「도봉사우상량문」(道峯祠宇上樑文)」은 조선 후기의 문신 만취(晚翠) 오억령(吳億齡)[1552~1618]이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위패를 모신 도봉 서원의 사우(祠宇)의 상량을 축복하는 글이다. 「도봉사우 상량문」은 오억령의 시문집 『만취집』 권5에 수록되어 있다. 오억령의 자는 대년(大年),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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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무렵 이정구가 도봉 서원을 방문하고 감회를 읊은 칠언 율시의 한시. 「과도봉서원유감(過道峯書院有感)」은 1615년(광해군 7) 무렵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가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 등과 함께 도봉 서원을 방문하고 나서 느낀 감흥을 적은 한시이다. 「과도봉서원유감」은 이정구의 시문집 『월사집(月沙集)』 권 17에 수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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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년 가을, 김상헌이 경성 판관으로 부임할 때에 도봉산까지 전송 나온 김상복에게 써 준 칠언 절구의 한시. 「사제 중정이 나를 전송하기 위해 도봉에 이르렀기에 이별에 임해서 써서 주다」는 1605년(선조 38) 가을에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함경도 경성 판관(鏡城判官)이 되어 그곳으로 부임하러 가기 위해 서울을 떠날 때, 그를 전송하러 온 아우 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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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이정구가 이항복 등과 함께 도봉 서원을 방문하고 나서 쓴 기문. 「유도봉서원기(遊道峯書院記)」는 1582년(선조 15)에 수몽(守夢) 정엽(鄭曄)[1563~1625]과 함께 도봉 서원에 머물면서 독서한 적이 있었던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가 1615년(광해군 7)에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 등과 함께 다시 도봉 서원을 유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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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 9월 15일부터 이틀간 이정구가 신응구·박호 등과 삼각산을 노닐고 와서 쓴 기문. 「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는 1603년 8월 금강산에 다녀온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1564~1635]가 산수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있다가 문득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의 승려 성민(性敏)의 편지를 받고 삼각산 유람을 기획하여 1603년 9월 15일부터 16일까지 신응구(申應榘)[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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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연산군을 비롯하여 조선 태조부터 고종에 이르기까지의 주요 사건을 왕대별로 다룬 MBC의 드라마. 이병훈이 연출[제6화, 제7화 제외]하고 신봉승이 극본을 썼다. 1983년부터 1990년까지 총 11화가 제작되어 방영되었다. 제1화는 1983년, 제2화는 1983년부터 1984년, 제3화는 1984년 1월 9일부터 1985년 2월 26일, 제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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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중구일 무렵에 이항복이 도봉 서원에 갔다가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중구우유영국서원 무주무붕 행낭유건률건다 작률자다이위기 심시요락(重九偶遊寧國書院無酒無朋行囊唯乾栗建茶嚼栗煑茶以慰飢甚是寥落)[중구일에 우연히 영국 서원에서 노니는데, 술도 없고 친구도 없고 행낭 속에 오직 말린 밤과 건다(建茶)만이 있으므로, 밤을 씹어 먹고 차를 달여 마시어 주림을 달래노라니 매우 쓸쓸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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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무렵 이항복이 도봉산의 가을 경치를 소재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추일유도봉산(秋日遊道峯山)」은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이 도봉산에 들렀다가 가을날 도봉산의 그윽한 경개와 자신의 맑은 심회를 읊은 한시이다. 「추일유도봉산」은 이항복이 60세 무렵에 동교(東郊), 즉 노원(蘆原)에 기거할 즈음인 1615년(광해군 7)에 지은 것이다. 「추일유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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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년 김상헌이 축석령에서 도봉산을 바라보고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축석령에서 도봉을 바라다보다」는 1607년(선조 40)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1570~1652]이 포천의 축석령(祝石嶺)에서 도봉산의 경관을 바라보고 느낀 감회를 적은 한시이다. 축석령은 경기도 포천과 양주 사이에 있는 고개 이름이다. 「축석령에서 도봉을 바라다보다」의 바로 앞에 수록된 시가 「북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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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무신. 고언백(高彦伯)의 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강화도 교동(喬桐)의 향리(鄕吏)로서 무과에 올랐다는 기록으로 보아 교동 지방에서 세거한 집안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국필(國弼), 호는 해장(海藏)이다. 고언백은 박진(朴晋)·황진(黃進)·원호(元豪)와 함께 임진왜란 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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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시회(時會), 호는 석담(石潭). 증조할아버지 권상(權常)은 효행으로 『삼강록(三綱錄)』에 이름을 올렸으며, 노인직으로 지중추부사를 제수 받았다. 할아버지 권협(權悏)은 정유재란 당시 명에 고급사(告急使)로 파견되어 원병을 청하기도 하였으며, 벼슬은 예조판서에 이르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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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 서원에 사액을 내릴 것을 청한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숙부(肅夫), 호는 직봉(直峯)이며 자호(自號)를 동강(東岡)이라 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고 증 통훈대부 통예원 좌통례(故贈通訓大夫通禮院左通禮) 김종혁(金從革), 할아버지는 고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 참찬관(故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 김치정(金致精)이다. 아버지인 통정대부(通政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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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성중(誠仲). 할아버지는 남궁찬(南宮璨)이고, 아버지는 동복 현감 남궁익(南宮翼)이다. 외할아버지는 김인각(金麟角)이며, 장인은 허윤관(許允寬), 숙부는 남궁숙(南宮淑)이다. 남궁침(南宮枕)[1513~1567]은 1540년(중종 35)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544년(중종 39) 사간원 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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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옥테로 만든 안경. 안경이 처음 사용되었던 시기는 조선 시대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심유경(沈惟敬)과 일본인 승려였던 현소(玄蘇)가 나이가 많음에도 안경을 낀 덕분에 글을 잘 읽어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고 하고 선조가 이를 중신들에게 하사하였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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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증조할아버지는 고려에서 대호군(大護軍)으로 치사한 목군경(睦君慶)이고, 할아버지는 성균관 진사 목충달(睦忠達)이다. 아버지는 정용 낭장을 역임한 목손검(睦孫儉)이며, 어머니는 능직 박천상(朴千祥)의 딸인 창원 박씨(昌原朴氏)이다. 부인은 면천 군사 안습(安習)의 딸인 안산 안씨(安山安氏)로 목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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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위치하거나 출토된 비. 비(碑)는 어떤 사적(事蹟)을 후세에 오래도록 전하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따위에 글을 새겨 세워 놓는 것을 가리킨다. 비에는 묘비[묘갈], 중수비, 신도비 등이 있다. 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장의(葬儀)에서 세우던 풍비(豐碑)에서 유래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풍비란 하관할 때 쓰는 장구(葬具)로 큰 나무를 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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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서원과 관련하여 활동한 인물.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달경(達卿), 호는 추담(秋潭), 환성당(喚醒堂). 창녕 성씨(昌寧成氏) 17세손이다. 아버지는 성호영(成虎英), 어머니는 덕수 이씨(德水李氏)로 5남 2녀 가운데 둘째 아들이다. 남양 홍씨(南陽洪氏)와 혼인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성만징(成晩徵)은 1659년(효종 10) 11월 7일 상주(尙州) 흥암리(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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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도봉 서원에 출입하였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호원(浩原), 호는 우계(牛溪)·묵암(默庵). 증조할아버지는 현령 성충달(成忠達)이며,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성세순(成世純)이다. 아버지는 조광조(趙光祖)의 제자이자 예산 현감을 지낸 성수침(成守琛)이며, 어머니는 판관 윤사원(尹士元)의 딸인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부인은 신여량(申汝樑)의 딸인 고령 신씨(高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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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도봉구 지역을 관할하였던 양주에 은거한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숙필(叔弼), 자호(自號)를 성재(醒齋)라고 하였다. 선조인 신성용(申成用)이 고려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현달한 이후 대대로 고위 관직을 지낸 집안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가평 군수(加平郡守)를 지낸 신여주(申汝柱)로서 가묘(家廟)에 불이 나자 신주를 보호하다가 사망하여 이조 좌참판(吏曹左參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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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초명은 유장(柳蔣), 자는 언박(彦博). 할아버지는 유양(柳壤)이고, 아버지는 유첨정(柳添汀)이며, 어머니는 홍종(洪琮)의 딸이다. 영의정 유순정(柳順汀)의 조카이다. 부인은 이심원(李深源)의 딸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며, 아들은 유사상(柳師商)이다. 유보(柳溥)[?~1544]는 성종 대에 진사시에 합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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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전주 이씨 회산군 묘역에 안장된 조선 전기의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 고조할아버지는 성종과 숙의 홍씨(淑儀洪氏) 사이의 다섯째 아들이었던 회산군(檜山君) 이염(李恬)[1481~1512]이다. 이염이 슬하에 아들을 보지 못하자 동생인 견성군(甄城君)의 둘째 아들 계산군(桂山君) 이수성(李壽誠)으로 후사를 잇게 되므로, 이수성이 이강(李鋼)의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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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전주 이씨 회산군 묘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로서 전주 이씨 회산군파(檜山君派)이다. 성종의 5남인 회산군(檜山君) 이염(李恬)의 고손(高孫)이며, 서창 수(西昌守) 이용(李墉)의 계자(繼子)로 생부는 서평 수(西平守) 이훈(李壎)이다. 고조할아버지인 회산군이 후사가 없어 견성군(甄城君) 이돈(李惇)의 차남인 계산군(桂山君)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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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관인이자 화가.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경립(敬立). 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이희량(李希良)이다. 부인은 김포 김씨(金浦金氏)로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이신흠(李信欽)[1570~1631]은 탁월한 그림 실력으로 도화서 화원(畵員)이 되었으며 관직은 부사직(副司直)에 이르렀다. 1604년(선조 37) 세자 책봉 주청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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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서 부모의 삼년상을 치르고 이곳에 별서(別墅)를 두었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민(子敏), 호는 동악(東岳)[東嶽]·동곡(東谷)·동엄(東广). 증조할아버지는 좌의정 이행(李荇)인데,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주도하여 추성위사협찬홍제보익공신(推誠衛社協贊弘濟保翼功臣) 1등에 책록된 풍성 부원군(豊城府院君) 이기(李芑)의 동생이다. 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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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극열(克說). 증조할아버지는 성종의 5남인 회산군(檜山君) 이염(李恬)으로 후사가 없었다. 이에 중종이 특별히 동생 견성군(甄城君)의 둘째 아들 계산군(桂山君) 이수계(李壽誡)로 후사를 이으라고 명을 내렸다. 아버지는 계산군의 2자 의성군(義城君) 이강(李鋼)으로서, 당대의 명문 휴암(休庵) 백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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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도봉 서원기(道峰書院記)」를 지은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덕수(德水). 아명은 현룡(見龍),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담(石潭)·우재(愚齋). 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이원수(李元秀)이며, 어머니는 신명화(申命和)의 딸인 평산 신씨(平山申氏)로 신사임당(申師任堂)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부인은 성주 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이다. 이이(李珥)[153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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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도봉 서원에서 수학하고 도봉산을 유람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月沙)·보만당(保晩堂)·치암(癡庵)·추애(秋崖)·습정(習靜). 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이계(李啓)이고, 어머니는 현감을 지낸 김표(金彪)의 딸인 광주 김씨(光州金氏)이다. 이정구(李廷龜)[1564~1635]는 19세가 되던 1582년(선조 15) 정엽(鄭曄)과 함께 도봉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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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중번(仲蕃), 호는 화음(華陰)·무구옹(無求翁). 아버지는 사간원 정언을 지낸 이주(李澍)로, 슬하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은 연원 부원군(延原府院君) 이광정(李光庭)이다. 이창정(李昌庭)[1573~1625]은 12세에 아버지 이주를 여의고 스무 살가량 차이나는 형 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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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산과 도봉 서원을 소재로 시로 읊은 문신이자 유학자. 이항복은 오성 부원군(鰲城府院君)에 봉해졌기 때문에 오성 대감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절친한 사이였던 이덕형(李德馨)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화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상(子常), 호(號)는 필운(弼雲)·백사(白沙)·동강(東崗)·청화진인(淸化眞人). 아버지는 참찬 이몽량(李夢亮)으로 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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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서울특별시 도봉구를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6세기 동아시아는 명나라의 쇠퇴, 여진족의 발흥, 일본의 통일 정권 수립 등 제반 정세 변화 속에서 크게 동요하였다. 조선은 이 과정에서 야기된 임진왜란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통일 정권이 수립되었으나, 아직 각 세력 간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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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 일대를 관할하는 양주 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로(景老), 호는 사암(思菴). 조선 전기 의정부 찬성사를 지낸 정구(鄭矩)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예문관 대교를 지낸 정전(鄭荃)이다. 어머니는 이조판서에 추증된 신극정(愼克正)의 딸인 거창 신씨(居昌愼氏)이다. 정대년(鄭大年)[1503~1578]은 1532년(중종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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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서 출토된 연산군 부인 신씨 지석(燕山君夫人愼氏誌石)의 찬자인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음(湖陰). 증조할아버지는 진주 목사 정사(鄭賜)이고,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정난종(鄭蘭宗)이며, 아버지는 부사 정광보(鄭光輔)이다.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조카이다. 정사룡(鄭士龍)[1491~1570]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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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서 출토된 연산군 부인 신씨 지석(燕山君夫人愼氏誌石)의 찬자인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음(湖陰). 증조할아버지는 진주 목사 정사(鄭賜)이고,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정난종(鄭蘭宗)이며, 아버지는 부사 정광보(鄭光輔)이다.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조카이다. 정사룡(鄭士龍)[1491~1570]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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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봉 서원에서 수학한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시회(時晦), 호는 수몽(守夢)·설촌(雪村). 증조할아버지는 찰방을 역임하고 좌승지에 추증된 정희년(鄭熙年)이고, 할아버지는 대사헌에 추증된 정선(鄭璇)이다. 아버지는 사후 영의정에 추증된 정유성(鄭惟誠)이고, 어머니는 윤언태(尹彥台)의 딸인 파평 윤씨(坡平尹氏)로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부인은 판서 이산보(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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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도봉 서원에 대한 시를 남긴 문인이자 문신. 본관은 통천(通川). 자는 입지(立之), 호는 간이(簡易)·동고(東皐). 아버지는 진사 최자양(崔自陽)이고, 어머니는 무송 윤씨(茂松尹氏)이다. 부인은 예안 이씨(禮安李氏)와 한산 우씨(韓山禹氏)로 최동망(崔東望), 최동문(崔東聞), 최동관(崔東觀) 세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다. 최립(崔岦)[1539~1612]은 서울에서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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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절(子節). 증조할아버지는 병조판서에 추증된 한영(韓寧)이고, 할아버지는 의정부사에 추증된 한영정(韓永矴)이다. 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한 한확(韓確)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를 지낸 홍여방(洪汝方)의 딸이다. 아버지 한확은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신이었으며, 누이는 세조의 아들인 덕종(德宗)과 혼인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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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죽산 한씨 묘역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한치례의 묘. 한치례(韓致禮)[1441~1499]는 조선 초의 무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자절(子節)이다. 아버지는 좌의정 한확(韓確)이고, 어머니는 이조판서 홍여방(洪汝方)의 딸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1466년(세조 12) 훈련원 도정이 되고, 이어 병조참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 누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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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무신 한치례의 신도비. 한치례(韓致禮)[1441~1499]는 좌의정 한확(韓確)의 셋째 아들로, 어머니는 이조 판서를 지낸 홍여방(洪汝方)의 딸이다. 아버지는 세조(世祖)의 즉위를 도운 공신이었으며, 누이는 세조의 아들인 덕종(德宗)과 혼인하여 훗날 인수 대비(仁粹大妃)가 되었다. 큰 고모는 명나라 성조(成祖)의 후궁으로 뽑혀 여비(麗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