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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639
한자 李信欽
이칭/별칭 경립(敬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산189-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기승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0년 6월 1일연표보기 - 이신흠 생
몰년 시기/일시 1631년 10월 8일연표보기 - 이신흠 졸
묘소|단소 이신흠 묘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산189-1지도보기
성격 관인
성별
본관 태안(泰安)
대표 관직 부사직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관인이자 화가.

[가계]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경립(敬立). 아버지는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이희량(李希良)이다. 부인은 김포 김씨(金浦金氏)로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이신흠(李信欽)[1570~1631]은 탁월한 그림 실력으로 도화서 화원(畵員)이 되었으며 관직은 부사직(副司直)에 이르렀다. 1604년(선조 37) 세자 책봉 주청사로 파견된 이정구(李廷龜) 일행을 따라 명나라에 다녀왔다. 1609년(광해군 1) 명나라에서 사신이 왔을 때 관반사(館伴使) 이정구(李廷龜) 일행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1628년(인조 6) 집경전(集慶殿)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영정(影幀)을 수리한 공로로 동반(東班) 6품 실직(實職)을 제수 받았다.

[학문과 저술]

이신흠은 인물 묘사에 뛰어나 이덕형(李德馨) 등 당대 유명한 신하들과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온 명나라 장수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고 한다. 또한 「동계 팔경도(東溪八景圖)」와 「섬강도(蟾江圖)」 같은 실경 산수(實景山水)를 그렸다는 기록도 보이지만 「사천장 팔경도(斜川庄八景圖)」와 「초충도(草蟲圖)」만이 전한다.

[묘소]

묘는 사적 제440호로 지정된 서울 초안산 분묘군의 가장 북단에 있는 태안 이씨 묘역[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자리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태안 이씨 세보(泰安李氏世譜)』에 따르면 이신흠은 이른바 종계변무(宗系辨誣)에 성공한 후인 1590년(선조 23) 광국 원종공신(光國原從功臣)이 되었고, 정여립(鄭汝立)의 난이 평정되고 나서 평난 원종 삼등 공신(平亂原從三等功臣)이 되었다. 또한 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1604년(선조 37) 선무 원종 이등 공신(宣武原從二等功臣)이 되었다. 1625년(인조 3) 인조반정(仁祖反正)의 공으로 정사 원종공신(靖社原從功臣)이 되었으며, 1624년(인조 2) 일어났던 이괄(李适)의 난에 대한 공로로 진무 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이 되었다. 사후 공조판서, 한성 판윤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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