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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367
한자 全州李氏寧海君派墓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은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7년 12월 31일연표보기 - 전주이씨 영해군파 묘역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106호로 지정
현 소재지 전주이씨 영해군파 묘역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1~82 일원(N37° 40′ 41.8725″, E127° 01′ 35.8278″)지도보기
성격 능묘
관련 인물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1465~1507]|이이(李㶊)|전주 유씨(全州柳氏)|영해군(寧海君) 이당(李瑭)[1436~1478]|완천군(完川君) 이희(李禧)|이질(李耋)|신윤동(申允童)|임천 군부인(林川郡夫人) 평산 신씨(平山申氏)|강녕군(江寧君) 이기(李祺)|충노(忠奴) 김동(金同)|이의(李義)
봉분 크기/묘역 면적 면적 1,138㎡[344.25평]
소유자 전주이씨 영해군파
관리자 전주이씨 영해군파
문화재 지정 번호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106호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 있는 조선 시대 세종의 아들 영해군 이당 등 직계 후손이 묻힌 전주이씨의 영해군파 묘역.

[개설]

전주이씨 영해군파 묘역(全州李氏寧海君派墓域)은 크게 동쪽 능선과 서쪽 능선의 두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서쪽 능선에는 가장 상단에 영해군의 장남인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1465~1507]의 묘와 신도비가 있고, 그 아래로는 부원정(富原正) 이이(李㶊)와 유인(孺人) 전주 유씨(全州柳氏)의 묘가 있다.

동쪽 능선에는 가장 상단에 영해군(寧海君) 이당(李瑭)[1436~1478]의 묘가 있고, 이 무덤 왼쪽 뒤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영춘군의 장남인 완천군(完川君) 이희(李禧), 완천군의 셋째 아들인 평성수(平城守) 이질(李耋)의 묘가 있다. 그리고 영해군 이당 묘 아래에는 증 좌찬성(贈左贊成) 신윤동(申允童), 영해군의 배위인 임천 군부인(林川郡夫人) 평산 신씨(平山申氏), 영춘군의 아들 강녕군(江寧君) 이기(李祺), 충노(忠奴) 김동(金同) 묘가 차례로 있고, 이 능선 동쪽으로 길안 도정(吉安都正) 이의(李義)의 묘가 분포하여 있다.

[위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81번지와 산82번지 일원이다. 지하철 1호선 도봉역 맞은편 무수골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따라 성신 여자 대학교 생활관 방향으로 약 1.5㎞ 가면 도봉동 느티나무가 서 있다. 전주이씨 영해군파 묘역은 이 보호수의 북쪽 능선부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전주이씨 영해군파 묘역은 영해군파의 파조인 영해군 이당 묘가 세워진 15세기 말엽부터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영해군의 아들인 영춘군 이인이 중종반정 이후 원종공신이 되면서 묘역이 크게 확장된 것으로 보이며, 영해군 이당의 직계 자손을 중심으로 16세기 이후까지 묘역을 확장하였다.

[형태]

파조인 영해군 이당 묘는 단분 단독장이고, 좌향은 동남향이다. 묘역에는 묘표, 석상, 문석인, 장명등 등을 배치하였다. 영해군 이당의 묘표는 개석이 하엽형인 15세기의 전형적인 묘표로 비신 앞면 가운데에 ‘영해군 시 안도공 당지묘(寧海君諡安悼公瑭之墓)’라고 썼다. 묘표는 개석 63×28×50㎝, 비신이 50×22×96㎝ 규모이다. 문석인은 복두 공복(僕頭公服)을 갖췄으며 눈과 광대뼈가 돌출되어 과장되게 안면을 표현하였다. 총 높이는 192㎝이다. 장명등은 개석이 사모지붕이고, 화사석(火舍石)[석등의 중대석 위에 있는 등불을 밝히도록 된 부분] 네 면에 사각의 화창(火窓)을 내었다. 총 높이는 200㎝이고, 개석의 너비는 72×72㎝이다.

영해군 이당의 아들인 영춘군 이인 묘는 쌍분 합장묘이고, 좌향은 동남향이다. 묘역은 산중턱에 넓게 조성되어 있는데, 상계에는 두 봉분 사이에 묘표를 1기만 세웠고, 봉분에는 뒤가 예각인 오각형의 호석(護石)을 둘렀다. 하계에는 석상, 동자석인, 장명등, 망주석, 신도비를 배치하였다. 이인 신도비는 이수 방부형으로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1509년(중종 4)에 세운 것으로, 당시 영의정인 남곤(南袞)이 비문을 짓고, 당대 최고의 명필가인 김희수(金希壽)가 글씨를 썼다. 총 높이는 273㎝이고, 개석은 86.5×30.5×54.5㎝이며, 대석은 111×72×61㎝이다.

영춘군 이인의 장남인 완천군 이희는 생몰년이 미상이나, 15세기 후반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묘는 쌍분이고, 좌향은 동남향이다. 묘표 1기, 석상, 혼유석, 장명등 1기, 동자석인 한 쌍을 조성하였다. 그중 동자석인의 조형성이 매우 우수한데, 쌍계를 갖추고 천의를 둘렀으며 연봉을 맞잡고 있는 모습이다. 얼굴을 뒤로 제쳐 당당한 모습이며, 연꽃 대좌를 받치고 있다. 동자석인은 16세기 전반기의 양식을 보이는데, 동자석인 발생 초기의 것으로 매우 중요한 도상이다. 서쪽 동자석인의 규모는 47.3×33.8×116.2㎝이다. 기타 석물의 배치는 아버지 영춘군 이인 묘와 유사한데, 후대에 추가하거나 보수한 것이 많다.

[금석문]

전주이씨 영해군파 묘역 중에서 주목할 만한 금석문은 이인 신도비이다. 신도비의 전액은 ‘목성공 신도비명(穆成公神道碑銘)’이며, 비제는 ‘유명 조선국 숭헌대부 영춘군 신도비명 병서(有明朝鮮國崇憲大夫永春君神道碑銘幷書)’이며, 앞면 끝 부분에 ‘정덕 사 년 구월 일 립(正德四年九月日立)’이라고 제작 연대가 쓰여 있다.

[현황]

전주이씨 영해군파 묘역은 1,138㎡[344.25평] 규모이며, 1997년 12월 31일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전기부터 중반까지 조성된 영역은 원래 그대로이나, 석물 종류 및 상설 배치가 후대에 보수 및 추가를 거듭하여 다소 원형을 잃고 있다.

[의의와 평가]

전주이씨 영해군파 묘역세종의 아들인 왕친의 묘소이다. 따라서 조선 전기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집중하여 나타나고 있는 왕친 묘역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 지역의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특히 1509년 건립된 이인 신도비 비문 중에 ‘도봉(道峯)’ 및 ‘노원(蘆原)’ 등의 현재 지명이 보이고 있어 이 지역 지명을 최초로 언급한 기록으로 추정되어 가치가 매우 높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