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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간 처 곽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698
한자 朴忠幹妻郭氏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임혜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504년 - 박충간 처 곽씨 남편 사망
추모 시기/일시 1514년 1월 12일 - 박충간 처 곽씨에게 정문 하사 및 복호
출생지 박충간 처 곽씨 출생지 - 충청남도 당진군 면천면
성격 열녀
성별

[정의]

조선 전기 현재의 도봉구 지역이 포함된 양주 지역에 살았던 열녀.

[가계]

박충간(朴忠幹) 처 곽씨(郭氏) 는 충청도 면천에 살았던 충순위(忠順衛) 곽순(郭純)의 맏딸로서 박충간과 혼인하였다. 곽씨에게는 여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16세에 구세충(具世忠)에게 시집갔으며, 남편 구세충이 죽자 상을 치를 때 애절히 하였으며 거상이 끝난 후에도 소복을 입고 고기를 먹지 않아 언니와 더불어 열녀로서 정려되었다.

[활동 사항]

곽순은 아들이 없이 두 딸을 두었는데, 맏딸 곽씨는 동생과 더불어 아버지를 지성으로 봉양하며 한결같이 시종하였다. 15세에 박충간에게 시집갔는데, 1504년에 박충간이 병사하자 양주에 장사를 지냈다. 당시의 양주는 현재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일대에 해당한다. 얼마 되지 않아서 장사지낸 곳이 금표(禁標)에 들어가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자 곽씨는 박충간의 묘소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기를 세 번이나 반복하였다.

상을 치를 때 애절함이 극진하였고, 상을 마친 이후에도 정려되기까지 10년 동안이나 소복을 입고 고기를 먹지 않았다. 또한 남편의 신주를 방에 모셔놓고 살아 있을 때와 같이 때마다 음식을 차려 제사를 지내면서 무시로 곡을 하였다. 삭망이나 절기 때에는 매번 묘소에 찾아가서 제사를 지냈는데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다.

곽씨의 동생 역시 남편 구세충이 죽자 극진히 장사지냈으며, 상을 마친 이후로 8년 동안 소복을 입고 고기를 먹지 않았다. 곽씨 자매의 이러한 행적이 조정에 알려져 1514년(중종 9)에 각각 열녀로서 정려되었다.

[상훈과 추모]

1514년 1월 12일에 곽씨 자매를 위해 각각 정문(旌門)을 세우고 복호(復戶)를 내려 요역과 전세(田稅) 이외의 잡부금을 면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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