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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718
한자 張德祚
분야 역사/근현대,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이진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4년 10월 13일연표보기 - 장덕조 생
수학 시기/일시 1926년 - 장덕조 대구 여자 공립 보통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2년 - 장덕조 개벽사 여기자로 입사
몰년 시기/일시 2003년 2월 17일연표보기 - 장덕조 졸
출생지 장덕조 출생지 - 경상북도 경산군 자인면 북사리 76
거주|이주지 장덕조 거주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구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
성격 소설가|언론인
성별
본관 인동(仁同)

[정의]

일제 강점기 말에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거주한 언론인이자 소설가.

[개설]

장덕조(張德祚)[1914~2003]는 1914년에 경상북도 경산에서 태어나 대구와 서울에서 교육을 받고, 1930년대에 이태준의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단편 120여 편, 장편 90여 편을 발표하여 한국 문단사의 다작 작가로 평가되고 있으며, 여성 작가 중 역사 소설을 가장 많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4년에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현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으로 이사하여 해방 때까지 거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활동 사항]

장덕조는 1932년에 이화 여자 전문학교 영문과를 중퇴하고 개벽사에 입사하여 기자 생활을 하였다. 같은 해 단편 「저희」[『제일선』]가 이태준으로부터 추천받아 등단한 이래, 노년까지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였다. 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 소설을 많이 창작하였다. 1943년에서 1945년까지 집중적으로 친일 성향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1950년 6·25 전쟁 때 대구로 피난을 가서 『영남 일보』 문화 부장 겸 여성 작가 최초로 육군 소속 종군 작가로 활동하였다.

『전선 문학』과 같은 잡지에 반공 소설과 수필을 발표하고 강연회에서 소설을 낭독하며 문인극을 공연하는 등 전시 기간 동안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51년에서 1952년까지 『대구 매일 신문』에서 문화 부장과 논설위원으로 있었으며, 『평화 신문』 문화 부장도 지냈다. 여기자로는 유일하게 휴전 협정을 취재하였으며, 그 공로로 후에 문화 훈장 보관장을 받았다. 1976년에 통일 주체 국민 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저술 및 작품]

장덕조는 1932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단편 120여 편, 장편 90여 편을 비롯해 희곡과 방송극, 수필 등도 발표해 한국 문단사의 다작 작가로 평가된다. 1932년에 단편 「저희」[『제일선』]가 이태준으로부터 추천받아 등단한 이래, 1930년대 말까지 약 7년간 장덕조가 발표한 작품은 30여 편이 된다. 이때 발표한 작품은 거의 당대 현실에서 취재한 단편 소설로서 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성(性)을 매개로 하여 남성과 여성이 만나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고 행·불행이 결정된다는 구성이 지배적이다.

대표작으로는 단편 「어미와 딸」[『삼천리』, 1934], 「여자의 마음」[『조선 일보』, 1935], 「자장가」[『삼천리』, 1936], 중편 「여인도」[『조선 일보』, 1939], 장편 「은하수」[『매일 신보』, 1937] 등이 있다. 1943년에서 1945년까지 집중적으로 친일 성향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수필 「출발하는 날」[『매일 신보』, 1943], 단편 「행로」[『국민 총력』, 1944], 희곡 「노처녀」[『조광』, 1944]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전후에는 대중적 취향의 신문 연재소설, 대하 역사 소설 집필에 주력하였다.

「광풍」[『동아 일보』, 1953~1954], 「낙화암」[『동아 일보』, 1956~1957], 「벽오동 심은 뜻은」[『한국 일보』, 1963~1964], 「이조의 여인들」[『한국 일보』, 1968~1972] 등의 역사 소설과 「다정도 병이련가」[『신태양』, 1954], 「지하 여자 대학」[『중앙 일보』, 1968] 등의 대중 소설을 연재하였다. TV 드라마 『대원군』과 『여인 열전』은 방송 후에 책으로 출간되었으며, 장편 소설 『다정도 병이련가』, 『장미는 슬프다』, 『광풍』, 『낙화암』 등이 영화화되었다.

장덕조의 작품은 사회 해부적인 주제보다는 흥미를 중시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구성에서부터 흥미 위주의 스토리 전개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냉엄하고 객관적인 필치로 소재를 파헤친다기보다, 인생과 역사를 낙관적으로 보는 선의의 인생관이 모든 작품에 펼쳐지고 있다. 문장은 활달하고 남성적인 특성을 보이고 있지만, 대중적인 흥미를 충족시켜 주는 중간층의 것으로서 독창적인 주제 의식이나 사상성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상훈과 추모]

6·25 전쟁 때 여성 작가 최초로 육군 소속 종군 작가로 활동하였는데, 여기자로는 유일하게 휴전 협정을 취재하여 그 공로로 후에 문화 훈장 보관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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