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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말 도당굿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544
한자 -都堂-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선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 신앙|마을 신앙
의례 시기/일시 음력 2월 초순 중 택일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서원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냈던 마을 제사.

[개설]

서원말 도당굿 서원 마을에서 음력 2월 초순 중에 택일하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당주 무당을 불러 이틀씩 크게 지냈던 굿이다. 현재에도 도봉산 광륜사 뒤편에 도당굿 터와 제단 및 도당바위가 남아 있다. 음력 2월이기 때문에 대개는 봄에 택일하여 도당굿을 지냈지만 지금은 당집이 훼손되면서 전승이 끊겼다.

[연원 및 변천]

도당굿은 대동[도당굿 행사 조직]에서 약 300년 전부터 지냈다고 보고 있다. 도당굿은 삼동(三洞)에서 지냈는데, 삼동은 서원말·안골·서원내 등이며, 무시울[무수울] 주민도 일부 참여하였다. 이틀씩 행하던 큰 규모의 마을굿이었고, 정씨 할머니라고 서원 마을에서 살던 무당이 당주 무당이었다. 당굿이 끊기기 전까지 정씨 할머니가 당주 무당을 맡았다. 마을 사람들은 6·25 전쟁 당시 당집이 훼손되면서 당굿의 전승 역시 끊겼다고도 하고, 1980년대 초에 사라졌다고도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도봉산 광륜사 뒤편에 6칸 정도의 당집이 있었고, 그 앞 공터에서 당굿을 하였다. 현재도 당집 앞에는 제단이 남아 있다. 당집의 동쪽 능선 위쪽에 도당바위가 현존한다.

[절차]

도당굿은 음력 2월 초순에 택일하였다. 도당굿 날짜가 잡히면 생기복덕을 보아 도가와 소임 및 당주를 선출하였다. 도가는 전체 도당굿을 주관하고, 소임은 삼동에서 각각 한 명씩 뽑았다. 당주는 목욕재계하고, 부부가 일주일 간 근신하는 등 가려야 할 것이 많았다. 당주와 소임들은 사흘 전부터 당집을 청소하고 제물을 준비한다. 도당굿 당일이 되면 먼저 동틀 무렵 무당과 당주, 소임 등이 산제당에 올라가 산신을 모셔 온다. 산신을 모셔 온 다음에는 무당이 이틀 동안 도당굿을 진행했다. 당주 무당 외에 여러 명의 조무와 악사들을 대동한 큰굿이었다고 한다. 도당굿의 제물로는 소를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도당굿은 굿이 진행되는 동안 마을 사람들이 굿에 참여하면서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도당굿은 마을의 제사이자 마을의 잔치였다.

[현황]

서원말 도당굿 을 지내던 당집은 소실되었지만 굿을 하던 터와 제물을 진설하던 제단과 신암(神岩)이라고 할 수 있는 도당바위가 현존하고 있다. 그러나 도봉산에 ‘둘레길’을 내면서 제단과 도당바위가 모두 출입 금지 구역에 위치하게 되었다. 따라서 앞으로 이들을 찾기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도당바위의 경우는 불에 그슬린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당집이 소실되면서 굿의 전승이 끊기자 제당과 신체(神體) 등이 방치되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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