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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579
한자 三伏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집필자 육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시 풍속
의례 시기/일시 초복|중복|말복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초복, 중복, 말복에 지내는 절기의 풍속.

[개설]

삼복(三伏) 은 일 년 중 가장 더운 시기를 의미하는데, 하지로부터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初伏), 넷째 경일을 중복(中伏), 입추 후 첫째 경일을 말복(末伏)이라고 한다. 복날은 10일 간격으로 들기 때문에 초복에서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이처럼 20일 만에 삼복이 들면 매복(每伏)이라고 한다. 하지만 말복은 입추 뒤에 오기 때문에 만일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이 되면 달을 건너 들었다 하여 월복(越伏)이라 한다. 삼복은 음력의 개념이 아닌 양력의 개념을 적용한 것인데, 소서(小暑)[양력 7월 8일 무렵]와 처서(處暑)[양력 8월 23일 무렵]사이에 들게 된다.

복(伏)은 ‘엎드리다’는 뜻인데, 음기가 양기에 눌려 ‘엎드려’ 있는 날이라는 뜻에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을철 금(金)의 기운이 대지로 내려오다가 아직 여름철의 더운 기운이 강렬하기 때문에 엎드려 복종한다는 데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천간(天干) 중 경일을 복날로 삼은 이유는 경(庚)이 속성 상 약하고, 오행 중 ‘금’이며, 계절로는 가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즉 가을의 속성을 지녔으며, 금의 기운이 내장되어 있는 경일을 복날로 정해 더위를 극복하라는 의미가 있다.

[연원 및 변천]

삼복 은 중국 진(秦)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이 무렵이 일 년 중 가장 무더운 때여서 삼복더위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1800년대 유만공(柳晩恭)은 “참외 쟁반에다가 맑은 얼음을 수정같이 쪼개 놓으니 냉연한 한 기운이 삼복을 제어한다. 푸줏간에 염소와 양 잡는 것을 보지 못하겠고, 집집마다 죄 없는 뛰는 개만 삶아 먹는다.”라고 하여, 지금처럼 19세기에도 삼복에 개장국을 먹는 풍속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대개 더위를 이기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복날 개고기를 먹었는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개를 삶아 파를 넣고 푹 끓인 것이 개장[狗醬]이다. 닭이나 죽순을 넣으면 더욱 좋다. 또 개장국에 고춧가루를 타고 밥을 말아 먹으면서 땀을 흘리면 기가 허한 것을 보강할 수 있다. 생각건대 『사기(史記)』 진덕공 2년에 비로소 삼복 제사를 지냈는데, 성안 대문에서 개를 잡아 해충의 피해를 막은 것으로 보아 개를 잡는 것이 복날의 옛 행사요, 지금 풍속에도 개장이 삼복 중의 가장 좋은 음식이 된 것이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고려 후기의 문집에는 삼복 풍속에 팥죽을 먹는다고 되어 있어 개장국을 먹는 풍속은 조선 시대 이후의 풍속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절차]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는 복날에 더위를 이기고 몸을 보하기 위해서 개장국, 삼계탕, 보리밥과 파국 등을 먹었다. 우선 복날에는 개고기국을 만들어 밥을 말아서 먹는데, 요즘에는 보신탕 혹은 영양탕, 사철탕이라는 명칭이 더 일반적이다.

보신탕은 개고기를 삶은 후 파, 닭, 고춧가루 등과 같이 끓여 만든다. 이것을 먹으면 더위를 물리치고 허약한 것을 막는다고 생각하였으며, 복날의 대표적인 음식이 되었다. 보신탕의 재료로는 황구(黃狗)가 으뜸으로 쓰였다. 대개 남자들은 여름이면 개고기를 먹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또 보리밥과 파국을 먹으면 더위를 물리치는 데 효력이 있다고 해서 이것을 즐겨 먹었다. 복날에는 팥과 멥쌀로 만든 죽을 먹거나, 민어를 사다가 탕을 끓이거나, 약병아리를 잡아서 삼계탕을 만들어 먹었다. 삼계탕은 인삼, 대추, 밤, 찹쌀 등을 넣어서 끓인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복날 술과 음식을 준비해 계곡이나 산을 찾아 하루를 즐겁게 보내며 더위를 잊었다. 계곡물에 머리를 감거나 목욕을 하며 무더위를 이겨냈다. 보신탕이나 삼계탕을 끓여 먹었는데, 삼계탕은 알 낳기 이전의 어린 암탉인 연계(軟鷄) 뱃속에 인삼, 찹쌀, 밤, 대추, 마늘을 넣고 푹 끓여 먹는다. 20세기에 들어 복날의 주요 먹을거리인 보신탕의 대체 식품이 되었으며, 인삼이 대중화한 이후 계삼탕에서 삼계탕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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