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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치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597
이칭/별칭 척전,엽전치기,망치기,망애치기,망깨,망깨치기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집필자 박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놀이
노는 시기 음력 1월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동전을 던져서 상대의 돈을 맞혀 따먹는 놀이.

[개설]

돈치기 는 도봉구 지역의 어린이들이 양지바른 곳에 모여서 일정한 거리를 둔 상태에서 돈을 던져 놓고, 그 돈 중에서 상대방이 지정하는 돈을 맞혀서 차지하는 민속놀이이다. 이를 ‘척전(擲錢)’, ‘엽전(葉錢)치기’ 등이라고도 한다. 대체로 음력 1월 봄이 시작할 무렵부터 행해졌고, 제각각의 방법이나 도구에 따라 변형이 가능했다. 함경도에서는 망치기[북청] 또는 망애치기[이원], 평안도와 황해도에서는 망깨 또는 망깨치기로 불렸다. 망돌[북청], 망애돌[이원] 또는 망깨돌은 돈치기에 쓰이는 돌을 이른다.

[연원]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상원조(上元條)에 “땅을 파서 구멍을 만들고 어른과 아이들이 편을 갈라서 돈을 구멍 가운데에 던진다. 그리고 왕대전(王大錢)을 던져 그 돈을 맞힌다. 맞힌 자는 그 돈을 가지며 이긴 것으로 한다. 잘못 맞히거나 못 맞힌 자는 진 것으로 여긴다. 상원날에 이 놀이가 더욱 성했다. 어린 아이들은 깨진 도기 조각을 사용해서 돈으로 삼고 이것을 던졌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조사된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1891~1968]의 『조선의 향토오락』에도 “구멍 밖에 있는 것은 큰돈이나 둥근 돌을 던져 상대가 지정한 것을 맞혔을 때 차지하게 된다.”고 적혀 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봄이 와서 따뜻해지면 양지 바른 곳에서 돈이나 혹은 그를 대체할 수 있는 돌같이 생긴 것을 가지고 놀 수 있다. 1993년 서울특별시에서 간행한 『서울 민속 대관』의 「놀이의 실상 일람」에서 도봉구 번 2동에 5대째 거주하는 주민 윤수환[남, 66]은 돈치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돈치기는 목기를 이용해서 맞추는데 그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목기는 납으로 만든 것으로 땅에 둥근 모양의 주물을 떠서 녹은 납을 부어 만들었다고 한다. 『양주 군지』에는 돈을 땅에 던져 놓고 서로 쳐서 승부를 가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놀이 방법]

2~3명에서 7~8명에 이르는 인원으로 놀 수 있다. 인원수대로 구멍 앞 3~4m 지점의 가로 그은 선 위에 동전을 한 개씩 던진다. 구멍에 넣거나 구멍에서 가까운 이로부터 차례가 돌아간다. 순서가 된 사람이 동전을 다 모아 쥐고 하나하나 던져 구멍에 들어간 것은 자신이 가지고, 다음은 다른 사람이 지적하는 돈을 납작한 돌로 맞히는 대로 가진다. 못 맞히면 다음 순번으로 넘어간다. 문화 콘텐츠 닷컴의 의례/놀이/연회 범주에서 다양한 일러스트와 함께 좀 더 자세한 방법을 참조할 수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돈치기 는 대략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 때부터 성행했다고 보이는데, 이는 돈치기를 위해서는 동전이 대량으로 유통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대원군의 아들들이 돈치기를 했다고 전해지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러 상민 계층 아이들까지 돈치기에 손을 댔다고 한다. 때때로 돈 대신 사금파리 등이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 본능 중 하나인 재물욕을 놀이를 통해 우회적으로 충족시키고자 하는 일환으로 생겨난 듯하다. 또한 정월 대보름을 전후로 많이 행해진 것은 따뜻해지는 날씨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평소에는 만질 기회가 없는 돈을 세뱃돈으로 가지게 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황]

돈치기 딱지치기 등과 함께 어린이들의 운동 신경이 발달하도록 도움을 주고, 경쟁심에 기초한 긴장감이 넘치는 재미가 있다. 세시 풍속 및 놀이 문화가 사라진 도봉구에서는 일상적으로 돈치기가 행해지지는 않지만, 때때로 교육의 일환으로 전승 된 민속놀이로 돈치기가 행해지기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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