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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144
한자 木里
영어음역 Mokri
영어의미역 Mokri Village
이칭/별칭 목동,화목
분야 역사/근현대,지리/인문 지리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성산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정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관련문헌 『호구총수(戶口總數)』|『영남읍지(嶺南邑誌)』|『창원읍지(昌原邑誌)』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동에 있던 목동의 옛 이름.

[개설]

목리는 창원시 목동의 이전 이름이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으나 창원공단이 조성되면서 마을과 농경지는 공단부지로 변했고, 목동이라는 이름도 1989년까지 유지되다가 그 마저도 사라졌다.

[명칭유래]

목리의 오래전 이름인 진목리(眞木里)는 『창원도호부권역 지명연구』에 따르면, ‘정남(正南)에 형성된 마을’을 뜻한다 하였다. 그 까닭은 진(眞)이 ‘참’이고, ‘목’(木)은 나무를 나타내는 옛말 ‘그루’인데 이것은 남(南)을 나타내는 옛말의 표기에 사용된 것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목리도 이와 같은 뜻을 지니는 마을 이름으로 볼 수 있겠고 마을 이름이 간략화 되면서 진목리가 목리로 변했다고 할 수 있다. 마을에 큰 회화나무 정자가 있었으므로 화목이라 했다는 일설도 있는데, 속지명으로 화목이 흔하게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일설은 믿을 수가 없다.

[형성 및 변천]

1780년대에는 진목리로 불렸으며, 1890년대에는 진목정리로 불렸다. 진목정리가 훗날 목리와 정리로 나누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목리는 창원부 하남면에 속해 있었는데, 1910년 마산부 하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에는 창원군 웅남면 목리가 되면서 정리(井里) 일부를 병합하였다. 1973년 웅남면이 마산시로 편입되면서 목동(木洞)이 되고 행정동인 웅남1동에 속하는 남부출장소의 관할이 되었다. 1976년에는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의 관할로 변경되었다. 1980년에는 창원시 목동이 되어 행정동인 웅남동에 속하였고, 1989년에는 목동이 성산동에 편입되어 법정동의 자격을 잃었다.

목리남천에 연접된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예전 목동으로 불리던 시절에는 70여 호가 마을을 이루었다 한다. 현재 목동이 있던 곳에는 창원공단의 여러 공장들이 들어서 있어 마을 모습은 찾을 수 없는데, 흔적으로 목동교가 남천에 있을 뿐이다.

[관련기록]

『영남읍지』(1895)와 『창원읍지』(1899) 등에는 진목정리(眞木亭里, 眞木丁里)로 기록되어 있고, 이보다 앞선 『호구총수』(1789)에는 진목리(眞木里)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처음 목리(木里)로 나온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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