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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마산 출신의 정치인이자 기업가. 강선규(姜善圭)[1925~1989]는 창원 출생으로 마산 공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早稻田] 대학을 졸업한 뒤 고려 대학교를 수료하였다. 마산 중리에 있는 내서 탁주 대표로 지역 사회의 기업인으로 활동하였다. 그 이후 제 2대 마산시 의원을 지내고 민주당 마산시당 위원장, 민정당 경남 제1지구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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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 고진규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창녕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 회사에 근무하였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귀국해 1954년 5월 20일 경상남도 마산시 오동동의 구 동양공업사 자리에서 삼성공업사를 창업하고 라디에이터를 주로 다루었다. 1957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다이와라지에타에서 최신 라디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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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출신의 기업가. 일제 강점기 젊은 시절 진보적 민족주의자로서 활동하였으나, 해방 이후 좌우합작 활동을 하다 미군정에 의해 발탁된 이후 보수 정치가, 언론인, 기업인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각 방면의 다양한 활동은 8·15 해방 이후 마산을 대표하는 지역의 유지의 삶의 전형을 보여준다. 김종신(金鍾信)[1904~1978]은 일본에서 유학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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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경제인. 김해 김씨로 김두영, 김한영, 김기영, 김준영 네 형제 중 막내이다. 첫째 김두영은 한국 무용계의 원로인 김해랑의 아버지이며, 둘째 김한영은 1940년 해산물 도매업자들과 합동으로 설립한 마산 해산 주식회사의 사장이다. 김준영(金駿榮)[1897~?]은 마산 어시장 객주로 일제 때 수산물 유통 사업으로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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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경제인·육영사업가. 1964년 한일 합성 섬유 주식회사(韓一合成纖維株式會社)를 설립, 국내 최대의 섬유 회사로 키워 1960~1970년대 경공업 중심 수출 정책을 선도하였고, 1973년 국내 업계 최초로 ‘1억불 수출의 탑’을 받았다.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수당(壽堂). 경상남도 김해에서 중농인 김창준(金昌準)의 2남 2녀 중 맏아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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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출신의 기업인. 김두영, 김한영[마산 해산(주) 사장], 김기영, 김준영[마산 상공회의소 초대 회장]은 형제이다. 김한영(金漢榮)[?~?]은 일제 강점기에 구 마산 원정에서 김한영 상점을 운영하였다. 1934년 10월 20일 마산 황물(荒物) 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1940년 17명의 마산 해산물 도매업자들이 자본금 13만 엔을 투자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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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지역 출신의 기업인. 우리나라 간장업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몽고 간장 브랜드는 1281년(고려 충렬왕 1) 몽고군이 일본 정벌을 위한 여몽 연합군을 편성해 마산에 주둔하면서, 병사들의 식수 조달을 위해 판 우물인 몽고정의 물로 간장을 담근 데서 유래하였다. 김홍구(金洪球)[1914~1971]는 진동 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마산으로 이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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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출신의 상공인·문화인. 문삼찬(文三贊)[1914~1978]은 8·15 해방 후 일본인 경영의 양조장을 불하받아 대흥 주조장(大興酒造場)을 경영하였고, 1948년 민족 청년단 경남 지부 마산시 단장을 지냈다. 1949년부터 1952년까지 마산 상공 회의소 부회장, 1957년부터 1960년까지 마산 상공 회의소 상임 위원을 역임하였다. 1955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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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가. 박용포(朴容甫)[1912~2004]는 1931년 진주 농림 고등학교 졸업 후 8·15 해방이 되자 1945년 마산에 와서 마산 금업, 마산 섬유를 설립하였다. 아주 모직 사장[1950~1958], 신창 모직 사장[1959], 유성 모직 사장[1960], 유성 모직(裕城毛織) 회장[1976]을 지냈다. 섬유 산업 경영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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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가. 신태을(申泰乙)[1915~1995]은 1972년 경남 연탄 주식회사 설립 때 창립 대표이사 및 부회장에 선임되었다가 1974년에 대표이사 겸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1969년 한국 연료 공업 협동조합 연합회 고문을 역임하였다. 이후 1976년 마산 상공 회의소 부회장, 1977년 대한 석탄 공사 부회장, 1980년 마을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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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 이병진(李炳珍)[?~?]은 1945년 마산 중앙동에서 마산 주조를 설립하여 1960년까지 운영하였다. 위치는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동 3가 경남 데파트 뒷길로 추정된다. 마산 주조와 함께 대동 주조도 운영하였다고 한다. 대동 주조는 1921년 창업된 시미즈[淸水] 양조장의 후신으로 알려져 있다. 시미즈 양조는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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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 국내 기계 공업의 선구자. 8·15 해방 이전에 소규모 주물 공장으로 출발 1950년대 후반 육상용 디젤과 해상용 디젤기관을 대규모 생산 영세했던 기계공업을 궤도에 올렸던 기업인이다. 일제 후반, 일본의 한반도의 공업 중 규모가 기계공업은 대륙 진출을 위해 북한 지역에 집중되었고, 남한 지역은 농업과 상대적으로 영세한 경공업이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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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원시에서 활동한 기업인. 이정석은 경상남도 진해시 근화동에서 이기두와 김가우의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42년 일본 후쿠오카[福岡] 공업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진해석유상사 대표로 취임해 경제인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50년의 9월에 해영산업의 대표를 맡았고, 1955년에 진해상공회의소를 설립, 초대부터 6대까지 회장을 역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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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창원 출신의 효자이자 자선사업가. 본관은 옥산(玉山). 자는 사영(士榮). 아버지는 전대홍(全大洪)이며, 아들은 전철환(全哲煥)·전병환(全秉煥)·전연환(全延煥)이다. 전근효(全根孝)는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형제간의 우애도 깊었다. 형이 어려서 죽고 난 후에 가정 살림을 맡아 배움에 전념할 수 없었지만,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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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어시장에서 제일 수산을 경영한 유통 객주. 전삼도는 소달구지에 염장고기를 싣고 김해장 등을 다니면서 장사를 했던 아버지를 따라 장사를 배웠다. 전삼도가 처음에 자전거를 타고 북면을 다니면서 장사를 했다고 한다. 전삼도가 운영했던 제일 수산은 현재 수산업 협동조합 옆쪽에 있었다. 젓갈 탱크 위에 마루를 넣은 서기들의 사무실이 있고, 그 안쪽으로 전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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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에서 대동 상회를 운영했던 객주·중매인. 최수동[?~?]은 수협과 기선권현망의 중매인 패를 함께 가지고 대동 상회를 운영하였다. 멸치가 주요품목이었지만 생물과 건어물도 동시에 취급했다. 그는 당시 멸치 19만㎏~22만㎏ 정도를 보관할 수 있는 창고를 갖고, 건어물을 취급하는 서기 3명, 생물을 취급하는 서기 5명을 두고 있었다. 이외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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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 최우열(崔祐烈)[1918~1975]은 1947년 불로 장유[구 복정 장유]를 창업하여 대표로 활동하였다. 불로 장유는 육군 군수품 납품 지정 공장이 되었다. 또한 미국 식품 의약 관리청[FDA] 공인을 취득하였다. 최우열은 1954년에는 구산 중학교를 설립하여 국가에 기증하였다. 마산 상공 회의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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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경제인·육영사업가. 최재형(崔載衡)[1919~1982]은 마산 상업학교를 졸업, 금융 조합 서기로 시작 유원 산업, 대선 소주, 유원 원료, 유원 건설, 남방 개발 사장, 마산 상공 회의소 회장, 경남 은행 감사를 지냈다. 일제 시대에 번성했던 마산의 주류 산업을 계승하되, 주정 회사를 만들어 마산의 주류 산업이 일본인이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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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지역의 기업인·정치가. 최찬열(崔贊烈)[1902~1990]은 경남 연탄 대표로 기업인으로 활동하면서 대한 곡물 협회 이사, 경남 에너지 창립 회장, 한국 연료 협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정치에 관심을 두고 마산시 의원으로 출마하여 초대 마산시 의회 의원이 되었고 이후 1952년 마산 시의회 의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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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활동한 경제인. 최희열(崔熙烈)[1912~1976]은 마산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고려 대학교 경영 대학원 연수 과정을 수료하였다. 제일 은행 부장, 제일 화재 해상 보험 상무, 서울 은행 상무이사, 1970년 초대 경남 은행 은행장을 지냈다. 이때 경남 은행은 마산시 창동에서 직원 54명으로 출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