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3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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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迎送廳 |
영어의미역 | Yeongsongcheong Government Offic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관부(전통 시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정용 |
[정의]
조선시대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설치되었던 관청.
[개설]
영송청(迎送廳)은 창원도호부에서 쇄마(刷馬)의 관리를 맡아보던 건물로 짐작된다. 쇄마란 조선시대 지방의 관아에 갖추어 두었던 말[馬]을 가리킨다. 영송청은 창원도호부 관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주로 비용을 지불하고 민간의 말을 고용하였다.
[제정경위 및 목적]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영송청은 1734년(영조 10) 창원부사 홍태두(洪泰斗)가 논 4마지기로 설치하였다. 그 후 1739년(영조 15) 창원부사 정여직(鄭汝稷)이 논 20마지기와 밭 6마지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일종의 운영 기금을 조성하기 위하여 세곡으로 바치고 남은 곡식들을 해마다 비축하여 논 29마지기와 돈 172냥을 마련하였다.
비축해 두었던 논과 돈은 1766년(영조 42) 창원부사 이한오(李漢五)가 영송청에 비치하여 관아에 드나드는 관원들을 맞이하고 전송하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사용하게 함으로써 백성들이 부담하던 비용을 모두 여기에서 충분히 충당하였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면 영송청은 창원도호부 관아에 출입하던 관원들과 이동에 필요한 말(馬)을 전담한 기관으로,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성함으로써 접대 비용과 관련된 지방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자 한 목적에서 설치되었다고 추측된다.
[관련기록]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 『영남읍지(嶺南邑誌)』 등에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창원부읍지』에 의하면, 영송청에는 민간으로부터 고용하여 사용하고 있는 말인 고마(雇馬)가 14필(匹)이고, 논이 40마지기(대개 1마지기는 200평)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