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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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現代 |
영어의미역 | Present Ag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남재우 |
[정의]
해방 이후 현재까지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 역사.
[개설]
현대라 함은 역사학의 시대구분 가운데 사상(思想)이나 그 밖의 것이 현재와 같다고 생각되는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동양사에서는 신해혁명(辛亥革命, 1911)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서양사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현대라고 말한다.
[행정구역 변천]
1976년 창원 지역을 관할하는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80년 창원시의 출범에 이어 1983년에 경상남도 도청이 이전해 오면서 창원시는 경상남도의 중심 도시로 급부상하였다. 한편 창원시 출범과 함께 시로 편성된 지역을 제외한 창원군의 나머지 지역은 의창군으로 재편되었다가 1991년 다시 창원군으로 개칭되었다. 이 후 1995년 기존의 창원시와 창원군의 일부 지역(북면, 동읍, 대산면)을 묶어 도농통합형 창원시로 새롭게 출범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8년 현재 관할 인구는 504,446명으로, 경상남도 인구의 약 16%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공업도시로의 변화]
창원 지역의 성장과 발전은 기계공업기지가 만들어지면서 본격화되었다. 1973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이 창원 지역의 공단예정지를 직접 시찰하였으며 같은 해 9월 창원기계공업기지 건설계획이 확정되었다.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던 창원 지역이 한국 기계공업의 요람으로서 첫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었다. 1974년 4월 1일 당시 창원공업기지는 총면적 46.27㎢의 주거 지역과 9.915㎢의 공장 용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1976년 9월 1일 경상남도는 창원지구공업단지 건설과 배후도시 조성 사업을 촉진하고 일반 행정 업무를 능률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 개소식을 가졌다. 출장소란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주민의 편의와 특정 지역의 개발을 촉진하기 위하여 설치된 종합적 행정 기능을 담당하는 행정기관을 말한다.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는 경상남도와 마산시가 관장해 오던 창원 지역의 공단건설 지원업무 및 도시기반 조성업무, 일반 행정 업무 등을 이날부터 포괄적으로 위임받아 실질적으로 시·군과 같은 종합 행정 기능을 수행하는 경상남도 직할기관이 되었다. 당시 출장소의 관할 구역은 마산시의 용지동, 성주동, 웅남1동, 웅남2동, 상북동, 팔룡동, 삼귀동 지역 112.38㎢였으며, 관할 인구는 35,531명, 가구는 6,324세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창원공업기지는 1976년~1977년도에 이르러 꽃피우기 시작했다. 1977년의 경우 100억 불 수출의 조기 달성이라는 한국 경제의 활황과 함께 창원기계공업기지에도 30개의 신규 업체가 유치되어 입주 확정 업체는 모두 88개로 늘었고 방위 산업 부문에서도 큰 진전을 보았다. 그리고 1978년 이후로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지속하여 창원기계공업단지는 1980년대에 2억 3천5백만 불의 수출을 달성하였다.
따라서 늘어나는 입주 업체와 확대되는 공업도시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자 1980년 4월 1일 창원시가 탄생하게 되었다. 창원 지역의 행정을 원활하게 뒷받침하기 위하여 1976년 9월 1일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가 설치된 지 3년 7개월 만에 계획도시 창원시가 세워지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도시계획은 처음부터 호주의 계획도시 캔버라(Canberra)를 모델로 삼아 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