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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마창 노련 연대 투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0485
한자 1·18馬昌勞聯連帶鬪爭
영어의미역 Solidarity Struggle of Masan and Changwon Labor Union on Jaunary 18th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노동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92년 1월 18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92년 1월 18일 - 1·18 마창 노련 연대 투쟁 종결
발생(시작)장소 경상남도 창원시
관련인물/단체 효성중공업노조|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홍여표

[정의]

1992년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효성중공업 노동조합 지원을 위해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이 벌였던 연대투쟁.

[역사적 배경]

1991년 하반기 효성중공업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민주파 집행부가 당선된 후 해고자 2명을 노조 전임자로 결정하자 사용자측이 이들 해고자의 회사 출입을 막고 민주파 집행부의 활동을 탄압함으로써 노사 간에 격돌이 예고되고 있었다.

[발단]

효성중공업 사용자측에서 해고자들의 회사 출입을 저지함에 따라 해고자들이 1991년 12월 18일부터 출근 투쟁을 계속하던 중 1992년 1월 9일 조합원들이 해고자 홍여표를 노조 사무실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러자 사용자측은 50여 명의 관리자들을 동원하여 노조 사무실에서 해고자 홍여표를 정문 밖으로 끌어내었다. 이에 조합원들이 중식과 작업을 거부하고 규탄 집회를 개최함으로써 파업투쟁이 시작되었다.

[경과]

노동조합의 파업과 철야농성이 계속되자 사용자측은 1992년 1월 16일 무기한 휴업 조치를 내렸고, 1월 17일에는 홍여표가 서울에서 경찰에 연행되었다. 그리고 1월 18일 아침 경찰 병력 200여 명이 동원된 가운데 사용자측은 조합원들의 출근을 봉쇄하고 철야 농성을 하고 있던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확성기로 자수를 권유하였다.

경찰이 농성장을 침탈할 조짐을 보이자 비상연락을 받은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산하 노동조합들이 즉각 조합원 비상총회와 확대 간부회의를 열어 연대투쟁에 나서기로 결의하였다. 1월 18일 오전 10시 30분 경 세일중공업 노동조합원 700여 명과 대림자동차 노동조합원 600여 명을 포함하는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 조합원 1,700명이 효성중공업 정문 앞에 집결하여 “공권력 철수와 노조 탄압 분쇄”를 외치며 경찰 및 구사대에 맞서 투쟁하였다.

[결과]

노동조합원들의 기세에 눌린 경찰의 황급한 철수와 함께 구사대도 본관으로 철수함으로써 이날의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러나 1월 21일 밤 노사 간 교섭이 막바지에 이른 듯 했으나 당시,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며 파업투쟁을 하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자진해산 소식이 언론에 전해지면서 회사는 다시 강경한 태도로 돌아섰고,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해 형사 고소와 징계를 앞세워 사직을 강요하였다. 이에 노동조합 간부 30여 명이 회사의 협박과 회유를 이기지 못하고 사직함으로써 민주파 집행부는 무너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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