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8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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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鵬益 |
영어음역 | Jang Bungik |
이칭/별칭 | 운거(雲擧),우재(憂齋),무숙공(武肅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경옥 |
[정의]
조선 후기 창원부사를 지낸 무신.
[가계]
장붕익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운거(雲擧), 호는 우재(憂齋). 할아버지는 교리를 지낸 장차주(張次周)이다.
[활동사항]
장붕익은 164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699년(숙종 25)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등을 거쳐 1702년 11월에 창원부사로 부임하였다. 재임 중 백성들에게 은혜와 위엄을 베풀어 아전들과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1703년 7월 훈련원 정(正)으로 옮겨갔다. 그 뒤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다가 경종 때 신임사화의 여파로 종성부(鍾城府)로 유배되었다. 영조가 즉위하면서 유배에서 풀려나 다시 벼슬길에 올랐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진어대장이 되어 난을 평정하였다.
1729년 부사직으로서 과거제의 폐단과 모순을 지적하여 상소하였다. 특히 무과 급제자가 수천 명에 달하나 전혀 임용될 자리가 없다는 것과 시규(試規, 시험 시행상의 규칙) 또한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시정을 촉구하였다. 같은 해 한성부판윤에 발탁되고 훈련대장을 거쳐 1734년 형조판서에 올랐다. 이 때 별군직(別軍職) 윤필은(尹弼殷)이 올린 「전선개조책(戰船改造策)」에 의거하여 전선과 거북선의 「개조도(改造圖)」를 새로 작성해 해전의 전술과 해상의 방어대책 강구에 진력하였다. 1735년 포도대장으로 일생을 마쳤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무숙(武肅)이며,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에 의하면 장붕익을 기리는 선정비 부사장공붕익운거만고명엄선정비(府使張公鵬翼雲擧萬古明嚴善政碑)가 창원시 동정동 94-3 천주산길 입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