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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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胤宗 |
영어음역 | Gim Yunjong |
이칭/별칭 | 계지(繼志),치도(致道),유계(柳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민긍기 |
성격 | 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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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 |
성별 | 남 |
본관 | 김해 |
[정의]
조선 중기 창원 출신의 유생.
[가계]
김윤종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지(繼志)·치도(致道). 호는 유계(柳溪). 금산(琴山) 김귀(金龜)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옥견(金玉堅)이고,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김혼(金渾)이다. 김난종(金蘭宗)이 사촌형이다.
[활동사항]
김윤종은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마을에 살았다. 정우당(淨友堂) 김식(金湜)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고제(高弟)가 되었다. 1519년(중종 14) 일어난 기묘사화(己卯之禍)에 김식을 숨겨 준 일로 달아났다가 잡혀 곤장을 맞고 함경도 명천(明川)으로 유배되어 거기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화 초에 속리산(俗離山)에서 잡혀 와 집에 이르렀는데, 종이 울면서 밥을 올리니 김윤종은 "장차 죽을 사람은 울지 않는데 네가 왜 우느냐?"라고 말하고는 태연히 밥을 다 먹었으며,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1786년(정조 10) 지역 사림들이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화양리 화목(花木)마을[일명 곡목]에 화산사(花山祠)를 세우고 김윤종을 추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