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077 |
---|---|
한자 | 孔宗周 |
영어음역 | Gong Jongj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최정용 |
[정의]
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창원(昌原). 증조할아버지는 공언(孔傿)이고, 할아버지는 공신주(孔臣肘)이다. 아버지는 공사문(孔斯文), 장인은 조공현(曺功顯)이다.
[활동사항]
공종주는 1414년(태종 14) 식년시 을과 3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관직 생활과 관련된 2건의 기사가 보인다. 그 중 하나는 1428년(세종 10) 8월 사헌부로부터 탄핵을 받은 일이다. 감찰인 공종주가 속히 관직에 나아가고자 하여 아버지의 기일(忌日)을 숨기고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율에 따라 장형(杖刑) 80대에 처해야 한다는 사헌부의 건의가 수용되었다. 감찰직 역시 제수된 후 청렴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곧바로 고신(告身)을 통과하지 못하고 거의 50일 만에 서경(署經, 신원 조회)을 받았다고 한다.
나머지 하나는 1439년(세종 21) 7월 공종주가 현풍현감이 되어 임지로 떠날 때의 기록이다. 하직인사를 할 때 세종이 공종주에게 “의창(義倉)을 설치한 것은 본래 가난한 백성을 진휼하자는 것이나 지금의 수령들은 감고(監考)에게 위임하고, 농상(農桑)을 권장하는 것은 본래 민생을 후하게 하자는 것이나 권농(勸農)을 정하여 보내어 채찍질하고 볼기치기에 급급하여 조금도 백성을 사랑하는 뜻이 없으니, 내가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 네가 그 고을에 가서 이것을 힘쓰도록 하라.”고 하면서 현풍현감으로서 고을을 잘 다스릴 것을 당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