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10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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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玄碩圭 |
영어음역 | Hyeon Seokgyu |
이칭/별칭 | 덕장(德璋),청단(淸湍),정경(貞景),현석규(玄錫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민긍기 |
[정의]
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덕장(德璋), 호는 청단(淸湍). 아버지는 현효생(玄孝生)이다.
[활동사항]
현석규(玄碩圭)[1430~1480]는 1453년(단종 1) 진사시에 급제하여 집경전직이 되었고, 여러 벼슬을 거쳐 내섬시 직장이 되었다. 1460년(세조 6) 문과에 차석으로 뽑혀 사헌부 감찰이 되었으며 개성부 도사, 성균관 직강, 형조정랑, 예조정랑, 중추부경력을 거쳐 1471년(성종 2)에 의정부 사인으로 있으면서 『세조실록(世祖實錄)』 편수관을 하였다.
1472년(성종 3) 사헌부 집의가 되었고, 1474년(성종 5) 승정원 동부승지가 되었으며, 1475년(성종 6) 승정원 우부승지가 된 데 이어 곧 승정원 좌부승지가 되었으며, 1476년(성종 7) 승정원 도승지가 되었다. 1477년(성종 8)에 사헌부 대사헌이 된 데 이어 형조판서가 되었다가, 중추부지사로 자리를 옮겨 사은사로 북경(北京)에 갔다가 1478년(성종 9) 돌아와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1479년(성종 10) 평안도관찰사의 임기가 찼으나 백성들의 청원으로 유임이 되었는데, 그때 중국의 요청으로 건주위(建州衛)를 정벌(征伐)하게 되자 유진장(留鎭將)을 맡아 정벌에 나섰다. 그 공로로 1480년(성종 11)에 의정부 우참찬이 되었으나 그 해 세상을 떠났다.
문과에 합격하여 관찰사가 되었다는 내용이 『창원군지(昌原郡誌)』에 기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경(貞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