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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1199
한자 高鎭奎
영어음역 Go Jingyu
이칭/별칭 고산(高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허충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기업인
출신지 경상남도 창녕군
성별
생년 1920년연표보기
몰년 2001년연표보기
본관 개성
대표경력 삼성라디에터공업 회장

[정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

[활동사항]

고진규는 일제강점기인 1937년 창녕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 회사에 근무하였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귀국해 1954년 5월 20일 경상남도 마산시 오동동의 구 동양공업사 자리에서 삼성공업사를 창업하고 라디에이터를 주로 다루었다. 1957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다이와라지에타에서 최신 라디에이터 제작기술을 익혔다. 국내에 들어와 그 기술을 회사에 적용함으로써 국내 최초로 양질의 라디에이터를 자력으로 생산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새나라자동차에 전체 물량의 20% 정도를 납품할 정도로 기술과 품질력을 인증 받은 삼성공업사는 당시 한국 라디에이터 분야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고진규는 국내 라디에이터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기술자로 인정받았다. 1963년 회사명을 삼성라디에터공업사로 바꾸고 마산시 상남동으로 확장 이전했다. 매월 8,000여 대의 라디에이터를 생산, 국내 시장의 80%를 점유했던 삼성라디에터공업사는 1969년에 필리핀에도 수출을 시작하였다.

1970년 6월에 법인으로 전환하고 지속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1986년에는 스리스타를 설립했다. 1989년에는 삼성라디에터공업을 3남인 고호곤 현 회장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스리스타 대표이사만 맡았다. 고진규가 이룩한 기업은 고려산업, 삼명기계공업, 태경, 샤릭 등이 있다. 삼성라디에터공업은 2000년 6월 현재의 명칭인 삼성공조로 이름을 바꾸었다.

고진규는 대외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여 1976년에는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 이사를 역임하였다. 1981년에는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위원, 1986년 범민족 올림픽추진중앙협의회 대의원, 1987년 부산경남팔각회 총재, 1989년 경남경영자협회 회장을 맡는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했다. 특히 지방은행인 경남은행 설립과 마산실내체육관 건립과정에 산파 역할을 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산업포장(1971년), 보건사회부장관 표창(1972년), 경상남도 산업평화상 은상(1991년), 제29회 저축의 날 한국은행총재 표창(1992년), 철탑산업훈장, 백만 불 수출의 탑, 1천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 허충호, 「삼성라디에터 편」(『경남 신문』, 1997. 5. 15, 1997. 5. 22)
  • 「내부 자료」(삼성 공조, 2008)
  • 「상훈 자료」(창원 상공 회의소, 2008)
  • 인터뷰(삼성공조 대표이사 고호곤, 2008. 9)
  • 인터뷰(삼성공조 전무 이상경, 2008. 9.)
  • 인터뷰(동환 대표이사 고동환, 200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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