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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1693
한자 樓亭
영어의미역 Palace and Pavilion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호열

[정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는 조선 시대의 누각과 정자.

[개설]

누정(樓亭)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명칭으로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누(樓)·정(亭)·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누각은 누관(樓觀)이라고도 하며, 대개 높은 언덕이나 관청 안팎에 많이 지었다. 누각 내부는 온돌방보다 개방된 마루를 위주로 꾸미며, 높은 대(臺) 위에 짓기 때문에 누대(樓臺)라고도 한다. 이에 비해 정자는 수려한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대개 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되며, 선비들의 유람·휴식·교유 등의 공간으로 건축되었다.

[누각]

경상남도 창원의 누각 건축으로 현존하는 것은 창원 향교 풍화루(風化樓)가 있다. 그러나 옛 문헌에는 연빈루·벽한루·벽허루 등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연빈루는 동헌에 딸린 작은 누각으로 1488년(성종 19)에 창원 부사 이영분(李永賁)이 지었으나 지금은 헐리고 없다. 홍귀달(洪貴達)[1438~1504]의 『허백정집(虛白亭集)』「연빈루기(燕賓樓記)」를 보면 벽허루(碧虛樓)의 곁에 5칸의 새 누(樓)를 짓고 이름을 ‘연빈(燕賓)’이라 하였다고 한다. 1488년 3월에 시작하여 5월이 되지 않아 완공하였으며, 귀한 손님과 백성들을 받아들일 만큼 넉넉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연빈루의 규모가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창원 도호부 관아가 마산 합포성에 있을 때 관아 안에는 벽한루(碧寒樓)와 벽허루(碧虛樓)가 있었으나 임진왜란합포성이 왜군에게 함락되면서 소실되었다. 벽허루에 대해 『세종실록』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객사(客舍) 동쪽에 있다.”고 되어 있고, 『경상도 속찬 지리지』에는 “창원 도호부 동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당시 벽허루가 객사 또는 창원도호부 동쪽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합포절도사영(合浦節度使營)에도 절도사 구겸(具謙)이 세운 장성루(將星樓)가 있었으나 후대에 헐렸다.

현존하는 유일한 누각인 창원 향교 풍화루는 명륜당 앞에 위치하고 있다. 풍화루는 풍속을 깨끗이 하고 돈후하며 소박한 기풍을 진작할 목적으로 부사 임익창(任益昌)이 1761년(영조 37)에 지은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주심포계 겹처마 팔작집이다. 아래층에 명륜당으로 출입하는 문을 시설하고 위층에 사면이 개방된 넓은 마루를 꾸민 형태이다. 위층 마루 주위에 계자각 난간을 둘렀으며, 아래층 기둥 밑에는 장주형의 초석을 세워 기둥을 받도록 했다.

사가(私家)의 누각으로는 창원 소답동 김종영 생가사미루(四美樓)가 있다. 사미루김종영 생가의 남서쪽에 위치하는 별채의 대문채에 해당한다. 상량문에는 ‘세 병인 사월 십오일(歲丙寅四月十五日)’이라 적혀 있어 1926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미루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이며, 가운데 칸은 상부에 공루를 가진 중층 구조로, 공루 아래에는 대문이 달려 있다. 기단은 다듬은 석재로 한 벌 두른 외벌대이며, 초석 역시 다듬은 초석을 사용하였다. 기둥은 둥근 것을 사용하였으며, 건축 형식은 초익공 형식이다.

[정자]

정자로는 열래정(悅來亭)과 관해정(觀海亭)·관술정(觀述亭)·월영대(月影臺) 등이 있다. 열래정(悅來亭)은 임진왜란합포성이 왜적에게 함락되면서 불타 없어졌다. 관해정은 1634년(인조 12) 경상남도 창원 지방 사림(士林)들이 정구(鄭逑)[1543~1620]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회원 서원(檜原書院) 안에 있었다. 조선 말기에 회원 서원은 훼철되고 관해정만 남았다. 현재 관해정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에 위치하며,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자의 규모는 140평 대지 위에 지은 26평짜리 한식 목조 기와집이다. 관해정이 있는 교방동 서원골은 무학산 계곡에서 남해를 바라볼 수 있는 풍치가 뛰어난 곳이다. 정자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외삼문(外三門), 관리사(管理舍) 등이 갖추어져 있고, ‘관해정’이라는 현판과 ‘취자당(聚自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정구와 그의 제자인 허목(許穆)의 향사를 지낸다.

관술정(觀述亭)창원시 의창구 내리동에 있으며,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24호로 지정되어 있다. 관술정은 4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창원 향교 서쪽에 있던 육영재(育英齋)를 훼철할 때 회산 감씨 문중에서 인수받아 1877년(고종 14) 내리동 반룡산 남쪽 기슭의 군용지 안에 옮겨지었다고 한다. 1936년에는 관술정 뒤쪽에 삼렬사(三烈祠)를 세워 임진왜란 때 선무 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오른 감경인(甘景仁)과 그 동생 감경륜(甘景倫) 형제를 모시고 해마다 음력 4월 15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월영대(月影臺)는 신라의 최치원(崔致遠)[857~?]이 대(臺)를 쌓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에 있으며, 경상남도 기념물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다. 높이 1.2m 정도의 직사각형 보호 축대로 둘러져 있고 동편 중앙에는 1691년(숙종 17)에 세운 유허비(遺墟碑)가, 서편에는 최씨 문중에서 세운 추모비가 있다. 동북쪽에 최치원이 해서체로 ‘월영대’라고 쓴 글자가 새겨져 있으나 마모가 심하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안축(安軸)·정지상(鄭知常) 등 수많은 문신과 선비들이 이곳을 다녀가고 남겨놓은 시들이 『동문선(東文選)』과 『여지승람(與地勝覽)』에 남아 있다.

또한 창원도호부 서문 밖에 있던 강무정(講武亭)은 부사 정숙량(鄭肅良)이 1759년(영조 35)에 지었으나 지금은 헐리고 없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에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도 여러 누정이 있었으나 대부분 임진왜란 때 불타고 누각으로는 창원 향교풍화루김종영 생가사미루(四美樓)만 남아 있다. 정자로는 관해정(觀海亭)·관술정(觀述亭)만 남아 있을 뿐 열래정·강무정 등은 헐리어 건축 규모와 형식을 구체적으로 살필 수 없다. 인근 지역의 누정 건축을 참고할 때 창원 지역의 누정 건축도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배경으로 지었으며, 마룻바닥 위주의 누각은 관청의 공적·사회적 목적으로, 그리고 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된 작은 정자는 장수(藏守)와 유식(遊息)을 위해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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