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4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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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南記者同盟馬山記者團 |
이칭/별칭 | 마산 기자단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종금 |
[정의]
1920년대 경상남도 창원 마산 지역에 있었던 경남기자동맹 소속 기자 단체.
[설립 목적]
1920년 일제가 식민 통치의 수단으로 ‘문화 통치’를 채택하면서 일제의 허락 하에 『조선 일보』·『동아 일보』 등 신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1920년대 초반에 지역 주재 기자들을 중심으로 경남 기자 동맹이 형성되었고, 곧이어 하부 조직으로 지역 단위의 기자단이 형성되었다. 마산 기자단이 신문지상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24년 1월로 그 이전에 기자단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변천]
기자단 활동은 192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활동이 적어졌으며, 1935년 이후 신문지상에 나타나지 않아 사실상 해체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마산 기자단은 주재 기자 외에도 신문 지국장 등 언론계 종사자들이 포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집행 위원회 등 내부 조직이 구성돼 있었다. 구성원은 조선 일보, 동아 일보, 시대일보 기자들이 주축이 되었다. 마산 기자단은 월례회와 망년회, 단체 간 체육 대회 등을 정기적으로 진행해 내부적으로 단결을 꾀했으며, 기근 구제 알선, 연대 단체 지원, 언론인 보호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특히 1925년 11월 14일에 일어난 시대일보 지역부장 체포 사건에 대해서 경찰서장에게 경고문을 발송했으며, 1927년 7월 동아일보 기자가 ‘통영 삼구회’라는 단체 회원들에게 폭행을 당하자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요구하기도 하였다.
마산 기자단은 언론계에만 관여한 것이 아니라 사회단체로서의 기능도 함께 했다. 1924년 ‘조선 기근 마산 구제회’라는 기근 구제 조직이 기자단 알선으로 형성됐으며, 1926년에는 마산 보통학교 교장이 학생들에게 소년단 가입을 방해하자 기자단이 강력히 항의했으며, 1926년 8월에는 기자단이 ‘마산 사회상 강연회’를 개최해 많은 주민들이 강연을 들었다.
또한 기자회는 민족 단체로서의 역할도 하였다. 1926년 7월 31일에는 일제가 주도한 ‘아시아 민족 대회’에 항의하며 15개 청년 단체와 함께 반대 집회를 열었다. 특히 1926년 기자단 집행 위원을 역임한 김형선 조선 일보 마산 지국장은 평생 독립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