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5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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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裕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배상현 |
[정의]
고려 충렬왕 대 일본 정벌을 위해 합포(合浦)[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출진하였던 무신.
[가계]
본관은 나주(羅州). 삼한공신(三韓功臣) 대광(大匡) 총례(聰禮)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형부상서(刑部尙書) 득황(得璜)이다.
[활동 사항]
나유(羅裕)는 음서로 출사하여 경선점녹사(慶仙店錄事)가 되었다. 거듭 승진해 장군이 되었고 원수 김방경 휘하에서 삼별초(三別抄)를 토벌하는데 공을 세웠다. 제주[耽羅]를 토벌할 때 대장군으로 종군하였는데, 선봉에 서서 공이 자못 컸다고 하여 원 황제가 중통보초(中統寶鈔)를 내렸다고 한다.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 때에도 참전하여 응양군(鷹揚軍) 대호군(大護軍)으로 승진하였다.
충렬왕 때 합포(合浦)의 지휘관으로 나갔는데 의례에 밝다고 하여 왕이 나유를 특별히 불러 팔관회(八關會)의 의례를 맡길 정도였다. 1274년 여몽연합군(麗蒙聯合軍)이 일본 원정을 도모할 때 합포에 출진하여 군사를 지휘하였으며, 병마지사(兵馬知事)로 종군하여 응양군대호군(鷹揚軍大護軍)이 되었다.
1287년 6월 왕에게 내안(乃顔)[원나라의 반란 세력]을 직접 정벌하도록 청해 호두패(虎頭牌)를 받고 중익부만호(中翼副萬戶)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5월 만호동지밀직사사(萬戶同知密直司事)로 왕의 선두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정벌에 참여하였다. 일이 끝난 후 1등공신에 책봉되었고 녹권(錄券), 전(田) 100결, 노비 20 구(口), 명위장군(明威將軍)의 호를 받았으며 원나라로부터 쌍주금패(雙珠金牌)를 받았다.
이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 원나라의 하정사(賀正使)가 되니 황제가 삼주호부(三珠虎符)·옥대(玉帶)·은정(銀錠) 및 활과 화살, 검(劒), 안장 얹은 말 등을 내려주고 회원대장군(懷遠大將軍)으로 임명하였다.
한편 나유에 대한 일화 가운데 임연(林衍)이 개인적인 원한으로 장인이 되는 조문주(趙文柱)를 살해하고 나유에게 이혼을 강요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의리를 지켜 거절하였다는 일화가 기록으로 남아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고려사』에는 용맹이 출중하고 의례에 밝았으며 어려움이 닥쳐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라 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