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50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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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山靑年同盟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양미숙 |
설립 시기/일시 | 1927년 12월 - 마산 청년 동맹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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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청년운동단체 |
설립자 | 김귀동(金貴東)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 있었던 청년 단체 연합체.
[설립 목적]
조선 청년 운동의 방향 전환기를 맞아 같은 사상과 정신 아래 여러 개의 청년 단체의 분리 되어 있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하에 마산 청년 동맹이 결성되었다.
[변천]
마산 청년 연합회는 정우회 선언 이후 민족 운동의 전국적인 방향 전환기를 맞아 1927년 4월[또는 12월] 마산 청년 동맹으로 발전적으로 해소되었다. 마산 청년 연합회에서는 마산 지역에 여러 개의 청년 단체를 분리해 있을 필요가 없다고 하여 각지 각 세포 단체를 해체하고 마산 청년 동맹으로 명의를 변경하기로 결의하고 1927년 12월 4일 오후 2시부터 마산부 수좌(壽座)에서 창립 발회식을 거행하였다. 창립 발회식에서는 최철룡(崔喆龍)의 경과보고가 있은 후 강령 및 규약과 정책을 통과하고 위원 선거 및 예산 편성을 한 후 토의 사항에 들어가 청년 총동맹에 가맹하기로 결정하였다.
마산 지역의 각종 사회단체는 상설 협의회의 구성을 목적으로 1928년에 창원 지역 사회 단체들과 연합하여 마창 사회단체 연합회를 결성하는데 여기에 마산 청년 동맹도 참여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8년 2월 마산 청년 동맹에서는 구마산 수좌(壽座)에서 신춘 음악회를 개최하였다. 1928년 2월 신간회 대회의 금지에 대해 항의문을 발송, 신간회 본부에는 격려문을 발송, 신간회 대회 금지에 대한 연설회를 개최하였다. 1928년 6월에는 남조선 개인 정구 대회 후원과 남녀 청년 현상(懸賞) 웅변대회 후원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8년 8월에는 구마산 수좌(壽座)에서 학술 강연회를 개최했는데 주제와 연사는 다음과 같다. 색채(色彩)에 대하여 김장우(金章右), 지구 성학(地球星學) 이규선(李圭善), 도덕과 도덕관 나영백(羅英伯), 우리 금융 경제의 현황 하상용(河相鏞), 연사는 주로 재외 마산 유학생으로 각 전문학교 재학생들이었다.
[현황]
1927년 12월 4일 창립 당시 임시 집행부로는 의장 김귀동(金貴東), 서기 김영진(金永辰), 최철룡(崔喆龍), 사찰 김형두(金炯斗), 최영한(崔永漢) 등이 선정되었고 이후 집행 위원 선거로 최철룡(崔喆龍), 김귀동(金貴東), 이○룡(李○龍), 최영한(崔永漢), 이정대(李廷大), 이기한(李起漢), 강해정(姜海井), 김성두(金性斗), 이성택(李聖澤), 신○○(辛○○), 김○(金○)이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회원 나이는 만 16세부터 30세까지로 창립 발회식에서 결정되었다. 마산 청년 동맹의 강령은 1. 본 동맹은 조선 청년 대중의 정치적 경제적 민족적 이익을 획득하기에 노력하며 생활의 향상을 기함. 1. 본 동맹은 조선 청년 대중의 의식적 교양 및 훈련의 철저를 기함. 1. 본 동맹은 조선 청년 대중의 확고한 조직의 완성을 기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