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5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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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海檄文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남재우 |
발단 시기/일시 | 1930년 8월 28월 - 진해 격문 사건의 발단인 격문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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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 시기/일시 | 1930년 8월 29일 - 진해 격문 사건 발생 |
종결 시기/일시 | 1930년 9월 27월 - 진해 격문 사건 주모자 피체 |
발생|시작 장소 | 성내동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면 |
발생|시작 장소 | 용원동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면 |
성격 | 항일 운동 |
관련 인물/단체 | 박정환|김민배|서도인|조맹규|조원갑|최해도|이준도 |
[정의]
일제 강점기 진해 지역에서 조선이 일본에 강제 병합된 국치일(國恥日)을 맞이하여 격문이 뿌려지고 포스터가 붙은 사건.
[개설]
1930년 8월 29일 국치일을 맞아 진해 웅천면과 웅동면 일대에서 항일 운동을 고취하는 격문이 뿌려졌다. 일제 강점기 기록인 ‘고등 경찰관 계적록’[1919~1935]에 의하면 “일한 병합 기념일 당일, 9월 2일, 9월 22일의 3일에 걸쳐 창원군 웅천면 박정환·김민배·서도인·조맹규·조원갑·최해도·이준도 등은 이 면 성내리와 웅동면 용원리에서 ‘국치일을 기념하자!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자, 조선 약소민족은 일어나 크게 싸우자!’”라는 격문을 뿌렸다고 한다.
[경과]
웅천 지역의 격문 사건은 1930년 8월 29일과 9월 2일, 9월 27일 3회에 걸쳐 일어났다. 그 준비는 8월 28일 오전 10시경 박상록의 집에서 갱지 2장을 4절로 만들어 “오늘은 8월 29일 망국 기념일, 아아! 불행한 사회, 약소민족은 각성하라!”고 쓴 포스터 8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제국주의를 타도하자! 일본 제국주의 파멸, 조선 혁명만세! 오늘은 8월 29일, 망국 기념일을 잊지 말자! 우리들의 무기는 단결뿐 궐기하여 싸우자, 일본!” 등을 쓴 전단 100장을 만들었다. 8월 29일에 포스터는 남문동 김봉순의 집을 비롯하여 대중의 눈에 잘 띄는 곳 7개소에 붙이고, 전단은 웅천 지역에서 조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 여러 곳에 뿌려 주민들에게 항일 민족의식을 북돋웠다.
[결과]
1930년 8월 29일 오후 김창업, 김민휴, 박정환 등이 혐의자로 체포되어 진해 경찰서로 압송되고 진해 경찰서 사법 주임 이하 형사와 진해 헌병 분견대 오오니와 특무가 창원 청년 동맹 웅천 지부 회관을 수색하여 청년회와 각 단체의 서류를 압수하는 동시에 청년 지부와 소년 동맹, 농민 조합 등 각 단체 간부의 가택 수색까지 벌였다. 그러나 증거를 찾지 못하자 다음날인 30일에도 웅천에 거주했던 조형규, 김희배, 김민배, 강영호 등의 많은 청년을 계속 문초하여 김민배, 서도인, 박정환 3인을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하였다. 기소된 3인은 1930년 10월 14일에 부산 지방 법원 마산 지청 제1호 법정에서 보안법 7조와 조선 형사령 42조 위반으로 징역 1년이 언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