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5156 |
---|---|
한자 | 馬山浦舊江場守護運動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윤상 |
[정의]
개항기 마산 지역의 정기 장시인 마산포 구강장을 일본인 거류지로 옮기려는 일본 영사관과 일본 상인들의 시도를 막아내어 한국 상인들의 상권을 지킨 운동.
[역사적 배경]
1899년 마산포 개항 당시 일본 상인들은 몇 사람 되지 않은데다가 자본도 영세하여 대부분 단순 잡화상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산으로 이주하는 일본인들이 늘어나면서 일본 영사관은 일본 상인들의 상권 확대를 돕기 위해 전통적인 장시를 강제로 일본 조계지가 있는 신마산 지역으로 옮기려고 하였다.
조선 후기에 설치된 조창(漕倉)의 영향으로 개항 이전부터 상업의 중심지였던 마산포 구마산 지역은 개항 이후에는 상권이 더욱 확대되어 매월 음력 5·15·25일에는 샛강[현재의 창원시 오동동, 남성동 해안]에서, 음력 10·20·30일에는 구강(舊江)[현재의 창원시 산호동 일대]에서 정기적인 장시가 열리고 있었다. 반면에 각국 공동 조계 안에 있던 일본인 거주 지역인 신마산의 상권은 매우 부진하였다. 이에 일본 영사관과 마산 일본인회는 구강장을 조계지로 옮길 것을 추진하는 한편 구마산에서 영업하는 일본 상인들에게도 조계지로의 이주를 권유하였다. 그들은 또한 창원 감리를 강압하여 구강장의 조계지 이전을 허가받고, 적극적인 준비와 선전을 통해 1902년 8월 3일[음력 6월 30일] 신마산[현재 창원시 월남동 일대]에서 시장을 개설하였다.
[경과]
구강장의 신마산 이전으로 오랜 생활 터전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마산포의 한국 상인들은 창원 감리서에 시장의 환원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한편 주민 대표를 정부에 파견하여 진정하였다. 아울러 마산포 상인들의 친목과 외국인의 상권 침탈에 대항하고자 1900년 5월 마산포 객주를 중심으로 설립한 마산 상호회(馬山商護會)를 통해 조직적으로 구강장 수호 운동을 전개하였다.
[결과]
이러한 상인들의 노력에 힘입어 신마산으로 옮겨갔던 구강장은 4개월 만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더욱이 구강장으로 환원된 이후에도 일본 상인들이 다시 모의하여 매월 음력 1일과 6일에 신마산 신월동에 새로이 장시를 개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구마산 상인들과 주민들이 단합하여 장시에 나가지 않음으로써 이것도 얼마 되지 않아 폐쇄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