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5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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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山浦線 |
분야 | 지리/인문 지리,역사/근현대 |
유형 | 지명/도로와 교량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윤상 |
[정의]
일본이 군용 철도로 사용하기 위해 1905년에 완공한 삼랑진에서 마산포를 잇는 철도 노선.
[건립 경위]
일본은 1904년 2월 대규모의 군대를 한반도에 진주시켜 주요 지역을 사실상 강점한 상태에서 뤼순[旅順]항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이어 한국 정부를 강압하여 ‘한일 의정서’를 체결하였는데, 그 주요 내용은 한국을 일본의 동맹국과 같은 지위로 만드는 한편 군사 작전에 필요한 곳을 임의로 수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이는 전쟁 시작과 함께 일본군이 한국의 여러 지역을 강점한 것을 추인하면서 군용지라는 명목으로 많은 땅을 점거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창원 지역 주변 여러 곳에 기지를 구축한 일본군은 병력과 군수 물자 수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철도를 부설하여 당시 완공 단계에 있던 경부 철도와 연결하려고 하였다.
[변천]
일본군은 1904년 9월 한국 정부의 사전 승인이나 양해도 구하지 않고 일본 육군 철도 건설 대원과 철도 건설 자재, 측량기 등을 실은 수송선을 마산포에 입항시켰고 곧바로 마산포와 삼랑진 사이의 군용 철도 건설에 착수하였다. 이후 불과 3개월 만에 지반 공사를 마치고 마사령 고개의 터널 공사와 선로 부설 공사에 이어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연장 560m의 교량 공사를 마무리하여 1905년 5월부터는 마산포와 삼랑진를 연결하는 군용 열차를 운행시킬 수 있게 되었다. 철도 부설 과정에서 일본은 정거장 부지 등으로 철도 용지를 지나치게 넓게 설정하여 한국인들의 재산을 빼앗고 헐값에 수용하였다.
한편 러일 전쟁이 끝나 군사 전용의 필요가 없어짐에 따라 1905년 11월 1일부터는 이 철도를 운행하는 열차에 일반인도 탑승할 수 있도록 개방하였고, 이에 따라 마산으로 이주하는 일본인도 급증하였다. 이후 이 철도 노선은 1906년 7월 경부 철도 주식회사에 속했다가 1909년 6월에는 통감부 철도청으로 관할이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