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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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沙手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원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0년 10월 14일 - 백사수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09-2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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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백사수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제작 시기/일시 | 1617년 - 백사수적 제작 |
보수|복원 시기/일시 | 1701년 - 백사수적 이항복 사후 상주목에서 간행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701년 - 이항복 사후 상주목에서 백사수적 간행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6년 1월 24일 - 백사수적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기증 받아 보관 |
현 소장처 | 경남 대학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출토|발견지 |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 - 山口県山口市 桜畠 3-2-1 |
성격 | 목판본 |
작가 | 이항복 |
소유자 | 한마 학원 |
관리자 | 경남 대학교 박물관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경남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66~1618]의 유묵을 모은 서첩.
[개설]
백사수적(白沙手蹟)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기증 받아 보관하고 있는데 백사수적은 그 중 1종이다. 2010년 10월 14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09-2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백사수적은 백사 이항복이 행초(行草)로 쓴 유묵(遺墨)을 목판(木版)으로 인쇄한 간행본(刊行本)이다. 모두 50쪽으로 이루어져 있고 크기는 44㎝×27㎝ 이며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백사수적의 책 마지막에 “光海廢母后時先生丁巳收議手草浮刻”라는 기록과 함께 “崇禎後辛巳刊于尙州牧”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에 따르면 백사수적의 내용은 1617년 조정에서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위에 관한 여러 논의들을 이항복이 모아 기록해 두었던 것을 1701년(숙종 27)에 상주목에서 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책에는 날짜별로 대신들의 여러 논의와 그에 대한 ‘선묘전교비답(宣廟傳敎批答)’, ‘광해비답(光海批答)’ 등이 실려 있으며 이항복이 죽기 1년 전에 기록한 유묵이다.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병조판서를 지내면서 많은 공적을 세웠으며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본관은 경주(慶州), 일명 오성대감(鰲城大監)으로 불렸으며, 자는 자상(子常)이다. 광해군 집권 후 북인이 집권하면서 임해군(臨海君)을 죽이려 하자 이에 반대하였고, 또 선조의 장인 김제남(金悌男) 일가를 역모 혐의로 멸산(滅散)시키고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살해하는 등 정권 강화 작업을 벌이자 이에도 적극 반대했다. 그럼에도 광해군은 이항복을 보호하였지만 1617년 인목대비 폐모론에 이항복이 반대하자 1618년 관직을 삭탈하고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 보냈다. 그 해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하였으나 광해군은 곧 바로 관작을 환급하고, 포천으로 예장(禮葬)하게 하였다. 『백사집(白沙集)』 등 여러 저서가 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