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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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兪漢芝隸書綺園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원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0년 10월 25일 - 유한지 예서 기원첩 보물 제1682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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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유한지 예서 기원첩 보물 재지정 |
이전 시기/일시 | 1996년 1월 24일 - 유한지 예서 기원첩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에서 경남 대학교 박물관으로 이전 |
현 소장처 | 경남 대학교 박물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
원소재지 |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 일본 야마구치현(日本 山口縣) |
성격 | 서첩 |
작가 | 유한지 |
서체/기법 | 예서 |
소유자 | 경남 대학교 |
관리자 | 경남 대학교 박물관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기원(綺園) 유한지(兪漢芝)[1760~1834]의 예서(隸書)를 모은 서첩.
[개설]
유한지 예서 기원첩은 경남 대학교가 1996년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으로부터 기증받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포함된 서첩으로, 기원 유한지가 쓴 예서를 모은 서첩이다. 유한지의 자는 덕휘(德輝), 호는 기원(綺園)이며, 노론의 핵심으로 영조·정조 대 정치를 이끌었던 기계 유씨(杞溪兪氏) 자산공파(慈山公波)의 후손이다. 그는 가문의 영향 아래에서 당대에 예서로 이름을 떨쳤던 김수증(金壽增)[1624~1701], 김진규(金鎭圭)[1658~1716]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전서(篆書)와 예서 학습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눌인(訥人) 조광진(曺匡振)과 더불어 조선 후기 예서 3대가로 꼽혔으며, 조선 후기 예서를 집대성하여 실천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신위(申緯)는 『경수당집(警修堂集)』에서 “영춘 현감 유한지의 전서·예서가 당대 제일이다.”라고 평하였고, 김정희(金正喜) 역시 『완당집(阮堂集)』에서 “유한지는 예서에 조예가 깊었다.”고 하였다. 오세창의 『근역 서화징(槿域書畵徵)』에서도 유한지를 전서와 예서에 모두 능한 서예가로 기록하고 있다.
[형태 및 구성]
형식은 첩장(帖裝)이며, 규격은 25.1×18.2㎝이고, 종이에 먹으로 썼다. 면수는 표지를 제외하고 24면이다.
[특징]
유한지는 일찍이 금석학의 중요성을 깨달아, 한대(漢代)의 예서를 수용하되 다양한 비문에 기록된 옛 서법을 모범으로 삼았다. 유한지 예서 기원첩에는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의 「곡강(曲江)」을 비롯해 칠언·오언·사언 대구 등 8편의 작품을 다양한 예서체로 썼다. 글씨들은 기년작(記年作)이 아니어서 정확한 작성 시기를 알 수 없지만, 글씨에서 무르익은 필치를 느낄 수 있다. 특히 한대의 4대 비(碑)라고 일컬어지는 「예기비(禮器碑)」·「조전비(曹全碑)」·「하승비(夏承碑)」·「장천비(張遷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풍을 담고 있어 금석학에 정통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유한지 예서 기원첩은 유한지가 한대 예서의 대부분을 섭렵하였음을 보여주는 다양한 필적을 싣고 있어 현존하는 유한지의 여러 글씨 가운데 단연 최고로 꼽힌다. 유한지 예서 기원첩은 2010년 10월 25일 보물 제168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