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4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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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廬山書堂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중리본동길 28[중리 977]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정용 |
현 소재지 | 여산 서당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중리본동길 28[중리 9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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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서당 |
양식 | 팔작 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중리에 있는 서당.
[개설]
여산 서당은 원래 조선 선조, 인조 시기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책봉된 무숙공(武肅公) 박진영(朴震英)을 향사하기 위해 밀성 박씨 후손들이 설립한 사당이었다. 이곳이 언제 서당으로 변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박진영의 자는 실재(實哉), 호는 광서(匡西)이다. 그는 1569년 함안군 하리에서 증 형조 판서 동천공(贈刑曹判書桐川公) 박오(朴旿)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그 공로로 선무 원종 이등 공훈(宣武原從二等功勳)에 오르고 곧 이어 관직에 나섰다. 1619년 순천 군수와 우영장을 겸임하였고, 1624년 이괄의 난에서 전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그는 다시 진무 일등 공훈(振武一等功勳)에 올랐다. 이어 평산 부사와 해서도 방어사를 겸임하다가 관직을 떠나 향리로 돌아왔다. 광려산 아래에 재실을 짓고 거문고와 책을 벗 삼아 여생을 보내던 그는 1641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위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중리본동길 28[중리 977]에 위치한다.
[변천]
여산 서당은 박진영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설립한 사당으로 출발하였으며 그 후 어느 시기에 서당으로 변화하였다.
[형태]
팔작 지붕 형식의 목조 건물로 정면 4칸 구조이다.
[현황]
여산 서당은 그다지 넓은 규모가 아니며 서당의 한옥 건물 대들보 5곳에는 주련이 매달려 있다. 주변은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는 상황이다.
[의의와 평가]
여산 서당은 임진왜란, 이괄의 난에서 활약한 공신인 박진영을 위한 사당이었다. 그의 유품은 함안군 산인면 종가와 국립 진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