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70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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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龍淵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이홍숙 |
[정의]
경상남도 창원 출신의 효부·열녀.
[가계]
본관은 경주. 아버지는 김정우이다. 성주 이씨 이태순에게 출가하였다.
[활동 사항]
김용연(金龍淵)[1891~1961]은 나이는 비록 어렸지만 자애롭고 현명하고 정숙하였다. 가난한 살림에도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셨다. 주변의 많은 이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1913년 남편이 빈곤한 생활을 타파하기 위하여 광산으로 돈을 벌러 떠났다.
집을 떠난 지 10년이 지나도 남편은 소식이 없었다. 부인은 13살 어린 딸에게 시모의 봉양을 맡겨 두고 남편을 찾아 나섰다. 승려로 변복을 하고 전국의 광산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다. 언뜻 들리는 소문으로 남편이 일본 북해도의 광산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자 부인은 다시 남장을 하고 대한해협을 건너가서 남편을 찾아냈다. 같이 돌아와서 종사를 이었다. 시모가 돌아 간 후에는 3년 상을 치러냈다. 이를 본 주위 사람들의 칭송이 드높았다.
[상훈과 추모]
향인들이 뜻을 모아 내서면 중리에 효열비를 세웠다. 한산(漢山) 안봉연이 비문을 짓고 여정(慮政) 이중섭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