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70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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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容浩 |
이칭/별칭 | 만석,학산,야돈,추강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홍숙 |
[정의]
마산 출신의 시인.
[개설]
본관은 김해. 호는 학산(鶴山)·야돈(野豚)·추강(秋江), 아명은 만석(萬石). 아버지 김치완(金致琓)이고 어머니는 박경포(朴敬布)이다.
[활동 사항]
김용호(金容浩)[1912~1973]는 1928년에 마산 상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금성 철공소, 원동 상회 등에서 일하다가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1938년부터 ‘맥’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1941년에는 메이지 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법과를 졸업하고 이어 이듬 해 신문 고등 연구과를 수료한 후 귀국했다. 귀국 후 선만(鮮滿) 경제 통신사 기자로 있으면서 시집 『부동항』을 펴내려 했으나 일제에 의해 압수되어 출판에 실패했다. 예술 신문사 주간 등을 거쳐 건국 대학교 강사, 단국 대학교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다. 8·15 해방 후 한때 좌익 문학 단체에 관여하기도 했으나 그 후 한국 자유 문학가 협회에 가담해서 기관지인 『자유 문학』의 주간을 역임하였다. 1962년에는 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 부회장을 지냈다.
1935년 10월 14일에 『동아 일보』에 시 「선언」을 발표하면서 『신인 문학』에 「첫 여름밤 귀를 기울이다」·「쓸쓸하던 그날」 등을 동시에 발표하며 문단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1년에는 도쿄에서 첫 시집 『향연』을 펴냈다. 1938년에 발표한 장시 「낙동강」에는 낙동강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의 생활상을 고발하면서 굴욕적인 역사적 현실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문학 외적 활동으로 예술 신문사 주간[1946], 시문학사 주간[1951], 남광 문화사 주간[1952]을 지냈으며 서라벌 예술학교[1955]와 단국 대학교[1958] 교수를 역임하였다. 1965년에는 문교부 국어교과서 편찬 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시집으로는 『해마다 피는 꽃』[1948], 『푸른 별』[1952], 『남해 찬가』[1952], 『날개』[1956], 『한국 해양 시집』[1953], 『사랑의 서정시』[1957], 『의상 세례 衣裳洗禮』[1962] 등이 있다.
[상훈 및 추모]
1956년에 아세아 자유 문학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