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7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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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命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정용 |
[정의]
조선 후기 진해 지역에서 지방관을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대구(大丘). 자(字)는 질보(質輔), 시호(諡號)는 정간(靖簡). 남원 부사 서정리(徐貞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병조 참의 서문상(徐文尙)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서종태(徐宗泰)이며, 어머니는 이헌(李藼)의 딸이다. 서명균(徐命均)의 아우이다.
[활동 사항]
서명빈(徐命彬)[1692~1763]은 1715년(숙종 4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723년(경종 3) 정시 문과(庭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1727년(영조 3) 7월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에 임명되었다. 그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1733년(영조 9) 홍문관 부제학이 되어 붕당을 없앨 것에 대해 거론하였으며, 1739년(영조 15) 대사헌이 되었다. 같은 해 5월 부제학이 되었는데 여러 유신들의 곡인소혐(曲引小嫌)[작은 허물을 들어 간곡히 임금에게 청함]에 의해 웅천 현감(熊川縣監)으로 나아갔다가, 이듬해 다시 부제학으로 임용되었다.
그 뒤 대사간, 대사헌, 대사성, 형조 참판, 예조 참판, 형조 판서 등을 역임하고, 1748년(영조 24) 7월 이조 판서가 되었다. 같은 해 12월 누차 소명을 어겼다는 대간의 탄핵으로 경주 부윤으로 나아갔다가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다. 1756년(영조 32) 4월에 영재(營財)[재물에 탐을 냄]를 이유로 파직되기도 했으나, 다시 대사헌을 거쳐 판의금부사, 한성부 판윤, 좌참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1740년(영조 16)에 창원시 진해구 웅천 1동[북부동]에 세운 ‘현감 서명빈 사적비(縣監徐命彬事蹟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