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8046 |
---|---|
한자 | 有進韓一合纖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222 |
집필자 | 김석호 |
설립 시기/일시 | 1964년 6월 22일 - 한일합성섬유공업 주식회사 설립 |
---|---|
이전 시기/일시 | 1967년 2월 17일 - 한일합성섬유공업 주식회사 경상남도 마산시 양덕동 222로 본사 이전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74년 - 한일합성섬유공업 주식회사 한일 여자 실업 고등학교 설립 |
해체 시기/일시 | 1998년 6월 23일 - 한일합섬 부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7년 2월 7일 - 한일합성섬유공업 주식회사 동양 그룹에 흡수됨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8년 5월 12일 - 한일합성섬유공업 동양 메이저에 합병됨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8년 1월 2일 - 한일합성섬유공업 물적분할을 통해 유진그룹 계열사가 됨 |
개칭 시기/일시 | 2021년 1월 12일 - 한일합성섬유공업 주식회사에서 유진한일합섬 주식회사로 사명 변경 |
최초 설립지 | 한일합섬 - 부산시 부산진구 전포동 66-1 |
주소 변경 이력 | 한일 합섬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222 |
성격 | 섬유 제조 전문 업체 |
전화 | 02-791-1114 |
홈페이지 | http://www.hanilsf.co.kr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에 있었던 섬유 제조업체.
[개설]
한국 섬유 산업의 선구자로서 국민 의생활 향상에 이바지해 온 국내 굴지의 기업이자 마산 지역 공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였던 향토 기업이다.
[설립 목적]
유진한일합섬은 선진국에서 나일론을 비롯한 화학 섬유가 큰 변혁을 일으키자 화학 섬유 제품인 스웨트·모시·내의·카페트·봉제·시트 커버·원단 등 2차·3차 제품의 직접 생산과 가공 생산을 병행하여 외화를 획득하고, 한국 섬유 산업의 중추적인 기능을 수행하고자 설립되었다.
[변천]
유진한일합섬은 1964년 6월 자본금 1,500만 원으로 부산시 부산진구 전포동에서 창립하였다. 1966년 1월 15일 마산시 양덕동에 본사를 착공, 1967년 1월 25일 준공하여 본사를 이전 하였다. 총 23만 1400㎡의 부지에 연면적 5만 9500㎡의 36동 공장 건물과 기능공 양성소 등을 갖추었다.
1986년 국제 상사, 남주 개발, 원효 개발, 신남 개발, 원효 물산을 인수하였고, 1987년 진해 화학, 1990년 한일 레져 개발을 인수하였다.
1998년 부도 처리, 1999년 회사 정리 계획안 인가 과정을 거쳐 2007년 2월 7일 동양 그룹에 흡수되어 2008년 5월 12일 동양 메이저와 합병되었다. 2017년 동양이 유진그룹에 인수되고, 2018년 1월 2일 물적분할되어 유진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이형 단면사, 세라믹 섬유, 도전성[전파 차단] 섬유, 안티 필링 섬유, 난연성 섬유, 고수출성 섬유, 원착 섬유, 초광택 극세사 섬유 등을 생산하였다. 원사 부문 이외에도 다양한 섬유 제품을 생산하는 종합 섬유 제품 메이커로 ‘포모드’, ‘윈디’, ‘발도’, ‘레쥬메’, ‘앙띰’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였다. 인테리어 부문에서는 모포와 다양한 패턴의 카펫 및 침구류를 생산하였고 아크릴 직기 모포를 개발해 국내 모포 산업의 효시가 된 하니론 모포를 출시하였다.
유진한일합섬은 고용 효과의 양적 확대와 고용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1974년 산업체 부설 학교의 효시인 ‘한일 여자 실업 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1992년에는 ‘한일 여자 전문대학’, 1993년 3월에는 ‘한일 전산 여자 고등학교[현 한일 여자 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교육 사업에도 힘을 기울였다.
[현황]
유진한일합섬은 최고 호황 때 자본금 967억 3000만 원, 연간 매출 5천 억 원에 달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였으나 경영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부도를 내어 동양 그룹에 편입되었다. 현재 한일 합섬 부지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의의와 평가]
유진한일합섬은 한국 섬유 산업의 선두 주자로서 1960년대와 1970년대 우수한 아크릴사로 만든 스웨터와 모포 등을 공급해 국민의 의생활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또 실업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던 시기에 2만 여 명의 종업원을 고용해 실업 해소의 일익을 담당하였고, 교육 사업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하지만 경영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결국 부도 처리가 되어 역사 속의 기업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