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10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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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寧曺氏婦人-烈行 |
이칭/별칭 | 금산리 열녀비 이야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금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노성미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8년 - 「금산리 열녀비」 『감동으로 적신 효성』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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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금산리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금산리 |
채록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금산리 |
성격 | 설화|열녀 이야기 |
주요 등장 인물 | 창녕 조씨 부인 |
모티프 유형 | 열녀담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금산리에서 남편을 따라 죽은 열녀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
[개설]
「창녕 조씨 부인의 열행」은 이강두의 처 창녕 조씨의 열행에 대한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8년 마산 문화원에서 발행한 마산 향토 사료집 『감동으로 적신 효성』에 「금산리 열녀비」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진북면 금산리 들판에는 창녕 조씨 열행비(昌寧曺氏烈行碑)가 있으며, 비의 뒷면에 1980년 청재 성권영이 지은 「금산리 열녀 비문」이 있다.
[내용]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금산리에 전주 이씨 강두가 살았다. 그의 처 창녕 조씨 부인은 열행이 대단했다.
부인은 창녕 조씨 병관의 딸이며 어려서부터 자질과 성품이 정순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인근의 칭송이 자자했다. 19세에 이 마을 전주 이씨 가문에 출가하여 강두의 처가 되었다. 시집온 지 몇 달 만에 남편이 기이한 질병을 얻었는데, 병세가 날로 위중하였다. 부인은 지성으로 남편을 간호했다. 또 매일 밤 목욕재계하고 자신의 목숨으로 남편을 대신하게 해달라고 하늘에 간곡하게 기도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보람도 없이 남편이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러자 조씨 부인은 스스로 음식을 끊고 순절할 뜻을 굳혔다. 남편의 장일을 앞두고 시부모께 불효를 빌고 동서에게 후사를 부탁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때 조씨 부인의 나이 꽃다운 20세요 혼인 한지는 꼭 1년째가 되는 때였다.
[모티프 분석]
「창녕 조씨 부인의 열행」의 주요 모티프는 남편의 죽음을 따라 목숨을 끊는 ‘열녀담’이다. 조선조 유교 사회에서 여자는 한 남자만을 섬겨야 하며 개가는 지조를 버리는 행위로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이 먼저 죽게 되면 부인은 지조를 지켜 그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사회는 그렇게 목숨을 버리는 여자의 삶을 아름다운 것으로 칭송했다. 이 이야기도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버린 부인이 절행을 실천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