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10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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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烈女靈山辛氏- |
이칭/별칭 | 신씨(辛氏) 정렬각(貞烈閣)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심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정헌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8년 - 「열녀 영산 신씨 이야기」 『감동으로 적신 효성』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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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신씨(辛氏)정렬각(貞烈閣) -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심리 |
성격 | 구비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신양금 |
모티프 유형 | 열행담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심리에 있는 정렬각에 관련된 구비 전설.
[채록/수집 상황]
『감동으로 적신 효성』[마산 문화원, 1998]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심리 마을 입구의 조그만 언덕에 세워져 있는 신씨(辛氏) 정렬각(貞烈閣)은 지금으로부터 260년 전 영산 신양금 부인 열행을 표정한 곳이다. 남편이 호랑이에 물려 가는 걸 보고 칼을 든 채 뒤를 쫒았으나 남편도 죽고 그녀도 또한 순절하였다. 마을 주민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매장해 주었다. 몇 해가 지난 뒤 고을 원이 이곳을 지날 때 인마가 발이 마비되어 이를 괴이히 여겨 연유를 알아 본 결과 비로소 열행을 알게 되어 상부하여 정려가 내려졌다. 때는 영조 병년(1736년)이다. 고종 때인 1900년에 왜인이 내습하여 방화했을 때 그 방화범은 피를 토하고 죽었고, 그 때 잃어버린 명판은 5년 뒤에 다시 돌아왔다는 일화도 전한다. 1905년 재건, 6.25때 소실되고 1953년 4건, 1989년 5건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열녀영산신씨정려수기」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영산면 심리에 열부 정려가 한 채 있으니 그 열부는 영산 신씨로 기부(其夫) 성명 일이무전(逸而無傳)이다. 원래 빈궁고독(貧窮孤獨)으로 살면서 이곳에 결거(結居)하여 다만 부부만이 생활해 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남편이 호확지변(虎攫之變)을 당하였다. 신씨 황중(遑中) 칼을 들고 추주(追走)하여 호랑이의 꼬리와 삼교(三咬)하여 사력을 다하였으나 지아비는 이미 불행하였다. 자신도 또한 사투로 기진하여 순열하였다.
이인(里人)들이 가련히 여겨 수해매장(收骸埋藏)하였더니 그 얼마 후 현재(縣宰)가 그곳을 행과(行過)케 되었는데 인마의 발이 마비되어 이동 불능인지라 현재가 이상히 여겨 마을 사람들을 불러 물으니 신씨의 사적을 시지(始知)하였다. 이에 사림을 창동연음(倡動聯音) 상문(上聞)케 하여 정려를 득몽(得蒙)하게 되었으니 때는 영조 병진년이었다.
[모티프 분석]
「열녀 영산 신씨 이야기」의 주요 모티브는 ‘신양금 부인의 열행담(烈行談)’이다. 남편이 호확지변(虎攫之變)을 당하자 부인이 호랑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남편을 구하기 위해 맞서 싸우다 결국 순절한다는 신(辛)부인의 열행을 표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