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1072 |
---|---|
한자 | 卞延壽一家-三絶 |
이칭/별칭 | 양촌리 변씨 삼강여(卞氏三綱閭)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경희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8년 - 「양촌리 변씨 삼강여」 『감동으로 적신 효성』에 수록 |
---|---|
관련 지명 | 변씨삼강여(卞氏三綱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 |
성격 | 구비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변연수|안동 김씨|변립 |
모티프 유형 | 충효열(忠孝烈)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의 변씨 삼강여(卞氏三綱閭)에 얽힌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1998년 마산 문화원에서 발간한 『감동으로 적신 효성』에 「양촌리 변씨 삼강여(卞氏三綱閭)」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 숲 밖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변연수의 일가를 기리는 비각인 변씨 삼강여(卞氏三綱閭)가 세워져 있다. 이 비석에 담긴 변씨 일가의 정려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 변연수(卞延壽)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주부에 올랐으나 휴관으로 향리에서 쉬고 있을 때 나이 55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그러자 아들 변립(卞岦)과 함께 “신하된 자 몸을 던질 때로다” 하고는 격문을 내어 원근의 의병을 모아 연해의 출몰하는 왜적을 격퇴하였다. 또한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합류하여 당포와 옥포 해전에서 적선을 크게 무찔러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아들 변립과 함께 당포해전에서 사력을 다해 적과 싸우며 용전하다 결국 전사하고 말았다. 나라를 위해 충(忠)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아들 변립은 전사한 아버지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며 마지막까지 분전하다가 그 또한 아버지의 뒤를 따라 효(孝)로써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남편과 아들을 동시에 잃은 부인 안동 김씨(安東金氏)는 이 소식을 접하자 식음을 끊은 지 팔일 만에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나라에서 이 삼인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 30년인 1893년에 나라에서 변연수 장군에게 증병조판서를, 아들 변립에게는 증좌승지(贈左承旨)를, 부인 안동 김씨에게는 증숙 부인(贈淑夫人)의 첩지를 내려 충효열(忠孝烈)의 일가삼강(一家三綱)을 기리는 정려를 내려 후세에 귀감으로 삼게 된 것이다.
[모티프 분석]
「변연수 일가의 삼강(三綱)」 이야기는 변연수의 충, 아들 변립의 효, 부인 안동 김씨의 열이 주요 모티프로 자리 잡고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전쟁 상황에서 변씨 일가의 삼강의 정신은 후세 사람들의 귀감을 목적으로 한다.